비극적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조지 플로이드는 코로나19 여파로 일자리를 잃은 4000만명이 넘는 미국인 중 한 명이었다. 식당 겸 나이트클럽에서 안전요원으로 일하다 실직했다. 운명의 날인 지난 5월25일, 그는 위조지폐로 담배를 사려 했다. 흉기를 지니지도 않았다. 경찰을 위협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백인 경찰관 데릭 쇼빈은 등 뒤로 수갑이 채워진 그의 목덜미를 무릎으로 8분46초간 눌러 살해했다. “숨을 못 쉬겠다”고 10여차례나 애원했건만 허사였다. 키 193㎝·몸무게 100㎏이 넘는 거구였기 때문일까. 흑인이어서일까. 아니면 과거 무장강도 전과 때문일까. 이 어느 것도 경찰의 야만적인 폭력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누구든 20달러 위조지폐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는 없다. 관행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그의 죽음 이후 미 전역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시위는 ‘내가 다음 희생자’라는 공포의 표현이자,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 된다는 항의의 몸짓이다.
플로이드의 죽음은 제도화된 폭력인 공권력의 실체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경찰의 임무가 시민 보호와 봉사가 아니라 잠재적 위험 제거라는 인식과 관행이 오래전부터 자리 잡았다. 흑인에게 더 가혹하게 적용됐을 뿐이다. 경찰폭력의 뿌리는 ‘노예 사냥’ 시절로 거슬러간다. 하지만 플로이드를 비롯한 일련의 사망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30년 전 시작된 ‘경찰의 군대화’ 계획이다. ‘1033 프로그램’으로 불린다. 미 국방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위해 걸프전 이후 남는 군 장비를 경찰 등 다양한 법집행기구에 활용할 목적으로 도입했다. 1997년 국방수권법(NDAA)에 포함되면서 공식화됐다. 그 후 ‘테러와의 전쟁’이 더해지면서 2014년까지 51억달러 규모의 군 장비가 미 전역 8000여 법집행기구에 전달됐다. 이 프로그램의 존재가 알려진 계기는 2014년 8월 ‘퍼거슨 사태’였다. 비무장 10대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찰관들이 쏜 총에 맞아 숨지자 분개한 흑인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면서 미주리주 퍼거슨은 혼란의 도가니가 됐다. TV화면에 잡힌 경찰은 군인을 방불케 했다. 퍼거슨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군 장비로 무장한 경찰은 전쟁에서 사람을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 군인처럼 행동했다. 시위대는 과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경찰의 군대화는 폭력시위를 자극했을 뿐 아니라 시민을 적으로 여기게 했다. 플로이드 죽음이 촉발한 시위 현장의 경찰도 마찬가지다. 소속을 알 수 없는 요원들이 중무장을 한 채 시위 현장 곳곳에 배치돼 논란을 빚었다.
‘흑인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BLM)’ 운동이 재조명받은 것도 눈에 띈다. BLM은 2012년 2월 10대 트레이번 마틴을 살해한 백인 자경단원 조지 짐머맨이 무죄 평결을 받은 데 항의하기 위해 시작됐다. 경찰의 폭력으로 얼마나 많은 흑인들이 살해되는지를 알리는 것이 목적이다. 이번 시위 현장에서 “숨을 못 쉬겠어”와 함께 BLM 구호가 울려퍼진 것은 이 운동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SayHerName)’ 운동의 존재도 확인됐다. 경찰에 의해 숨진 흑인 여성에 초점을 맞춘 운동이다. 2015년 7월 텍사스의 한 교도소에서 사망한 샌드라 블랜드의 죽음이 본격적인 계기가 됐다. 블랜드는 숨지기 사흘 전 단순 신호위반으로 경찰에 체포된 뒤 교도소에 수감 중 자살했다. 체포 과정과 죽음, 인종차별적인 경찰폭력 모두가 흑인들의 분노를 유발시켰다.
플로이드의 죽음은 도널드 트럼프의 인종주의와 무능한 지도력을 재확인시켜준 계기가 됐다. 그는 이번 시위가 폭동으로 변질된 것에만 초점을 맞췄다. 시위대를 “폭력배”라고 부르고, 배후에 극좌 ‘안티파’가 있다고 했다. 시위 진압을 위해 연방군까지 동원하려 했다. 퍼거슨 사태와 볼티모어 폭동을 계기로 축소된 1033 프로그램을 확대시킨 이도 트럼프다. 일부 몰염치한 백인들이 플로이드 죽음을 조롱하기 위해 ‘플로이드 챌린지’ 영상을 배포하며 인종갈등을 부추겼지만 트럼프에 비할 바가 아니다. 플로이드가 숨진 미니애폴리스 시의회가 경찰조직을 해체하기로 하고, 민주당이 경찰개혁법안을 발표하는 등 경찰폭력을 막기 위한 긍정적인 신호가 나오고 있지만 트럼프가 ‘법과 질서’를 강조하고 있어 결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
플로이드 죽음의 아이러니는 피해자 플로이드와 가해자 쇼빈이 같은 곳에서 안전요원으로 일한 사실이다. 그러나 서로 교류했을 가능성은 없다. 근무시간이 달랐기 때문이다. 플로이드는 주중에, 쇼빈은 주말에 일을 했다. 만약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였다면, 이들의 운명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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