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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경향의 눈

[경향의 눈12] 코로나 시대의 탐욕(200820)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이 시작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끝은 보이지 않는다. 위기는 잊지 못할 기억을 남긴다. 세 사람이 떠오른다. 먼저 전기자동차업체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다. 지난 5월 중순 갖은 억지 끝에 공장을 재가동해 공분을 샀다. 두번째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물류센터 직원에게 ‘목숨 건’ 출근을 강요해 물의를 빚었다. 마지막은 15세 인도 소녀다. 지난 5월 실직한 아버지를 자전거에 태워 1200㎞ 떨어진 고향으로 돌아가 화제가 됐다. 머스크와 베이조스는 코로나19로 돈방석에 앉은 대표적인 억만장자다. 봉쇄가 시작된 3월18일~8월5일 미국 억만장자의 재산은 6854억달러 증가했다. 올해 한국 예산의 1.5배 수준이다. 세계 최고 갑부 베이조스는 이 기간에 757억달러를 벌었다. 단연 1위다. 머스크는 두번째로 많은 521억달러를 불렸다. 증가율(211.8%) 1위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배 불리기에 혈안이니, ‘탐욕의 화신’이라 할 만하다. 반면 인도 소녀는 최대 피해자인 빈곤층을 대표한다.

머스크가 공장을 재가동한 속내를 보면 울화통이 치민다. 내세운 명분은 주문량 폭주에 따른 사업 차질이지만 실상은 천문학적인 스톡옵션이다. 그는 2018년 3월 연봉을 받지 않는 대신 12단계에 걸쳐 약 2030만주의 스톡옵션을 받는 보상안에 서명했다. 첫 단계 조건이 테슬라 시가총액이 1000억달러를 돌파해 6개월간 지속할 경우 169만주를 2018년 1월 가격(350.02달러)에 매입하는 것이다. 이후 500억달러씩 증가할 때마다 같은 수의 스톡옵션을 받는다. 계약 당시 시가총액은 590억달러였다. 코로나19는 주가에 날개를 달아줬다. 그가 공장 재가동을 강행한 시점은 첫 단계 스톡옵션 조건이 충족될 무렵이다. 두번째 조건도 지난 7월 달성했다. 베이조스도 마찬가지다. ‘언택트’ 확대로 주문이 쌓이고, 대량 일시해고로 일할 사람이 넘치니 가동할수록 이익이 치솟는다. 물류센터를 멈출 이유가 없다. 두 사람의 행태는 공공의 안전보다 개인의 잇속을 앞세운 탐욕의 극치다. “전쟁은 돈벌이에 좋은 수단”이라고 일찌감치 간파한 스메들리 버틀러에 빗댄다면 전염병이 두 사람에게 꼭 그렇다.

<불평등의 역사>를 쓴 월터 샤이델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전쟁, 혁명, 국가붕괴, 전염병이 불평등을 해소했다고 주장했다. 감염병이 부의 재분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이를 뒤흔들었다.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가 30년간 이어진 국제사회의 빈곤 감소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를 ‘대역전(the great reversal)’이라고 불렀다. 코로나19는 부국·빈국 간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주요 20개국(G20)이 경기부양에 쏟아부은 돈은 10조달러가 넘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3배 이상 많다. 미국은 4차례 2조8000억달러를 투입했다. 국내총생산(GDP)의 13.2%다. 5차 부양책도 논의 중이다. 일본은 GDP의 21%가 넘는 117조엔을 투입했다. 한국도 GDP의 3%가 넘는 59조2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했다. 빈국들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국가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미래세대에 짐이다. 코로나19 위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니 재정에만 매달릴 수도 없다. 버니 샌더스 미 상원의원이 이달 초 발의한 ‘60% 부유세 부과’ 법안이 눈길을 끈다. 3월18일부터 연말까지 억만장자의 재산 증가분이 대상이다. 진보 싱크탱크 IPS는 3월18~8월5일까지만 적용해도 4220억달러를 거둘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사후정산 메디케어 비용 1년치(4000억달러)보다 많다. 하버드대 경제학자 이언 쿠메카와는 지난 6월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에서 미국인 상위 1%에게 5%, 0.1%에게 5%의 세금을 추가하면 1조5000억달러를 충당할 수 있다고 썼다. 과거 비슷한 ‘버핏세’가 좌절된 경험에 비춰보면 실현은 쉽지 않다. 하지만 세계통화기금(IMF)조차 지난 4월 ‘연대특별세’를 제안했다.

영국 경제학자 AC 피구가 1차 세계대전 후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1회성 25% 부유세’를 제안한 지 100년이 지났다. 코로나19는 부유세 논의를 되살리는 계기가 됐다. 고삐 풀린 자본가의 탐욕은 통제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선출된 지도자나 정부 위에 군림하고 있다. 이들의 오만과 무례함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두고만 볼 일이 아니다. 대재앙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장마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일깨웠듯 코로나19가 부유세 도입의 새로운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