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의장은 미국 내 권력서열 3위다. 대통령 유고 시 부통령 다음으로 권한대행을 맡는다. 건국 이래 남성 전유물이던 이 자리에 여성이 선출된 것은 2007년이었다. 주인공은 민주당의 캘리포니아주 11선 하원의원 낸시 펠로시(81)였다. 조지 W 부시 2기 행정부 후반기부터 버락 오바마 1기 행정부 초반기까지 2번 연속 4년 동안 하원의장을 지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후반기인 2019년 1월 다시 하원의장에 선출됐다.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가 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펠로시는 미 역사상 선출직으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여성이었다.
펠로시가 3일(현지시간) 개원한 117대 하원에서 다시 하원의장으로 뽑혔다. 하원의장으로만 4번째 소임을 맡게 된 것이다. 미 공화당이 펠로시를 비하해 부르는 멸칭이 ‘샌프란시스코 리버럴’이다. ‘강남좌파’와 같은 의미다. 하원의장으로서의 펠로시의 존재감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 처음 드러났다. 그때 이끌어낸 840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법안은 당시로는 역대 최대 규모였다. 오바마 행정부의 최대 성과인 건강보험개혁법안 도입도 그의 손에서 완성됐다. 그만큼 공화당에 펠로시는 두렵고 성가신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펠로시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트럼프에 맞선 3번째 임기는 끝까지 가시밭길이었다. 펠로시는 2019년 말 트럼프 탄핵을 추진했다. 미 역사상 3번째 탄핵 시도였다. 지난해 2월엔 트럼프가 연두 국정연설을 하는 동안 연설문을 찢어버렸다. 남성성을 과시하는 트럼프를 방송에서 대놓고 조롱했다. 트럼프는 그를 ‘미친 낸시’ ‘신경질적인 낸시’라 불렀다. 펠로시는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되면 정계은퇴를 고려했다고 한다. 결국 트럼프 당선이 3번째 하원의장을 맡으면서까지 그에게 맞서게 된 계기였다.
트럼프는 떠나지만 펠로시는 남았다. 조 바이든 행정부와 함께 트럼프가 남긴 코로나19 팬데믹과 침체된 경제를 회복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미 의회의사당에 있는 하원의원 회관 중 하나가 레이번 빌딩이다. 최장 하원의장을 지낸 샘 레이번의 이름을 땄다. 첫 여성 하원의장 펠로시의 이름도 언젠가 의회 건물 이름에 새겨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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