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경국가들 멋대로 쿼터 대폭 늘이고 고래잡이 규제완화 움직임까지
남극해에서는 지금 고래를 잡으려는 일본 포경선단과 이를 막으려는 국제 환경운동단체 그린피스 선박 간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고래를 잡으려는 일본과 보호하려는 그린피스 간의 신경전이 처음은 아니지만 지난해 말과 올 초에 걸쳐 두 차례 충돌할 만큼 최근엔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 8일 남극해에서 고래를 잡던 일본 포경선단의 ‘니신마루호’와 포경을 막으려는 그린피스 선박 ‘아틱 선라이즈호’ 간에 충돌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선라이즈호는 충돌하면서 뱃머리가 파손됐다. 양측은 책임공방을 벌였다. 아틱 선라이즈호의 셰인 로텐버리 선장은 “사고 당시 고무보트에 탄 그린피스 대원들이 근처에 있던 일본 배 측면에 ‘고래보호지역에서 잡은 고래고기’라는 글씨를 쓰고 있는데 갑자기 니신마루호가 고의적으로 우리 배를 들이받았다”고 주장했다. 니신마루호는 선라이즈호보다 선체가 배 이상 길고 6배 이상 무거운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그린피스의 주장을 일축하고 오히려 충돌 책임이 그린피스에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고래연구소의 하타나카 히로시 국장은 “니신마루호 선장으로부터 아틱 선라이즈호가 니신마로호를 두 번이나 들이받아 약간의 피해를 입었으나 다행히도 선원의 피해는 없었다는 보고를 받았다”면서 “그린피스는 당장 위험한 범죄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타나카 국장은 “그린피스는 어느 쪽 선박이 강한지, 약한지 안다”면서 “그린피스가 짐을 옮기는 작업을 고의로 막기 위해 우리 배를 들이받은 것으로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포경작업 저지활동 물대포로 방해
이 충돌에 앞서 지난달 21일에는 니신마루호가 그린피스 대원들에게 ‘물대포’를 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린피스의 아틱 선라이즈호와 에스페란자호는 이날도 일본 포경선단의 포경을 막는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선라이즈호 로텐버리 선장은 “아침에 고래가 작살에 잡히는 것을 봤다”면서 “우리는 잡힌 고래를 포경선에 싣지 못하도록 니신마루호 선미 쪽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며 45분 동안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갑자기 니신마루호가 물대포를 쐈으며 그린피스 고무보트 한 척이 전복했다는 것이다. 로텐버리 선장은 또 에스페란자호가 니신마루의 선미로 접근하자 소형 포경선인 교마루1호가 에스페란자호를 두 번이나 들이받고 달아났다고 밝혔다. 모로누키 히데키 일본 농수산성 원양어업국장은 일본 포경선단의 말을 인용해 “일본의 포경임무는 밍크고래의 수효를 정확히 조사하는 데 중요하며 국제포경위원회(IWC)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고래를 잡고 있다”고 말했다. 모로누키 국장은 “그린피스의 포경 금지행위는 불법적이고 위험하다”면서 “우리는 이같은 불법행위와 선원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활동을 삼갈 것을 그린피스에 정중하게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그린피스의 아틱 선라이즈호와 일본 포경선 니신마루호 간의 충돌은 6년 전인 1999년 12월에도 있었다. 당시에도 충돌을 두고 양측 간에 책임공방이 벌어졌다. 결과는 그린피스의 승리였다. 영국 재보험사인 로이드보험측이 니신마루호에 책임이 있다고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린피스가 최근 사활을 건 고래보호활동을 벌이는 이유는 2006년이 그동안 20년간 지속돼온 고래보호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중대한 해’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같은 우려는 두 가지 움직임에서 드러나고 있다.
일본은 보호지역에서도 포경작업
우선 일본,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대표적인 포경국가들이 올해 고래잡이 쿼터를 늘린 점이다. 일본은 올해 연구용 고래잡이 목표량을 지난해에 비해 배 이상으로 늘려 밍크고래 935마리와 참고래 10마리를 잡을 계획이다. 노르웨이도 올해 밍크고래에 대한 상업적 포경 쿼터를 지난해 797마리에서 30% 늘어난 1052마리로 상향조정했다. 이는 노르웨이가 IWC가 금지한 상업적 포경을 93년에 재개한 이래 가장 많은 포획량이다. 3년 전부터 연구용이라는 이름으로 포경을 장려해온 아이슬랜드는 지난해 밍크고래를 39마리 포획했으며 올해도 비슷한 숫자의 고래를 포획할 계획이다.
또 하나 우려되는 점은 20년간 금지된 상업용 고래잡이에 대한 규제완화 움직임이다. IWC는 1982년 영국 브라이튼에서 열린 IWC 총회에서 남획으로 인한 고래 멸종을 막기 위해 상업용 고래잡이를 영구적으로 금지하고 연구용 포경만 허용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4년 뒤인 86년부터 시행했다. 이 일은 세계 환경운동사에서도 드문 승리로 기록돼왔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적정 수준의 고래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 상업용 포경을 허용해야 한다며 93년부터 상업적 포경을 실시해왔으며, 일본과 아이슬란드도 연구용 포경이라는 미명하에 사실상 상업용 포경을 실시하며 고래잡이 규제 해제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6월 카리브해 연안 세인트 키츠와 네비스에서 열릴 IWC 총회에서는 포경국가들이 고래잡이 규제를 풀기 위해 총력을 다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총회 결과는 부정적이라는 것이 전문가의 진단이다. 일본이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경제원조를 대가로 IWC 가입과 지지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벌인 결과 지난 6년 동안 IWC 회원국 가운데 몽골과 말리 같은 내륙국가를 포함한 14개 국가가 일본 지지국이 됐다는 것이다. 마크 시몬즈 고래 및 돌고래 보호협회의 국제담당국장은 “일본은 지난해 6월 한국 울산에서 열린 IWC 총회 때 이미 수적인 우세를 보였지만 규제완화를 위한 행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실제로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시몬즈 국장은 “이는 고래 및 돌고래 보호활동의 엄청난 퇴보가 될 것”이라며 “사람들은 이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다가와 있는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린피스를 비롯한 고래보호단체들이 더욱 분노하는 것은 일본의 포경활동이 국제 고래보호지역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IWC는 94년 남극해 2100만 제곱마일을 ‘남극해 고래보호지역’으로 선포했지만 일본은 이를 무시해왔다. 이 때문에 그린피스와 시셰퍼드 등 고래보호단체들은 호주, 뉴질랜드, 미국, 영국 등 포경 반대국가들에 일본의 연구용 포경에 대한 법적 제재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포경국가들의 적극적인 고래잡이 규제완화 움직임 속에 외롭게 벌이고 있는 그린피스의 고래보호활동은 지금 성패의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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