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말하세요.”(리즈가르 모하마드 아민 재판장)
“말하지 않겠습니다.”(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이름을 확인해야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됩니다.”(재판장)
“당신은 누구요. 이 재판이 원하는 게 뭡니까?”(후세인)
“내키는 대로 써도 됩니다.”(재판장)
“나는 오전 9시부터 이 옷을 입고 시키는 대로 벗었다가 입기를 여러 번 했습니다.”(후세인)
“자리에 앉으세요. 다른 피고인에 대한 인정신문부터 하겠습니다.”(재판장)
10월 19일 ‘세기의 재판’으로 관심을 끈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에 대한 첫 공판은 인정신문부터 설전이 오가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아민 재판장은 웃는 표정을 지으며 지금 필요한 것은 이름을 말하는 것뿐이라고 진정시켰지만 후세인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재판부의 정통성을 부인하며 “나는 여전히 이라크 대통령”이라고 큰소리쳤다. 그는 또 “유죄냐, 무죄냐”라고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 “무죄”라고 반복해 대답했다.
체포 후 22개월 만에 특별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후세인은 공판 3시간 내내 이와 같은 허세와 당당함으로 일관했다. 검찰측이 기소 요지를 읽는 동안에는 쓴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철저히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 철창에 갇힌 피의자 신분이었지만 여전히 이라크의 대통령이었다. 후세인의 당당함은 인정 신문이 끝난 뒤 이어진 사실 신문 때도 여전했다. 수석검사인 자파르 알 무사위가 1982년 6월 암살시도에 대한 보복으로 시아파 마을인 두자일에서 약 150명을 학살한 사건에 대한 기소 요지를 설명한 뒤 사건 직후 주민 4명을 직접 조사한 비디오테이프를 증거물로 채택하려 하자 후세인은 조작가능성을 들어 증거물 채택에 반대했다. 재판장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후세인의 허세는 법정을 떠나며 법정 보안요원과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면서 막을 내렸다. 보안요원 2명이 후세인의 팔을 이끌자 그는 뿌려치면서 “나를 건드리지 마라. 손을 떼라”고 호통쳤다. 이 소동이 있은 후 경비는 팔을 놔주고 후세인은 유유히 법정을 빠져나갔다. 이 장면은 이라크 정부가 의도했는지 몰라도 일반에게 공개된 TV에는 방영되지 않았다.
퇴정과정서 보안요원들과 실랑이
이 날의 공방은 유고슬라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의 재판을 떠올리게 한다. 1990년대 발칸반도에서 저지른 대학살로 기소돼 법정에 선 밀로셰비치도 후세인과 마찬가지로 재판관들과 설전을 벌이며 재판부의 정통성을 부인했다. 다른 점은 밀로셰비치 재판은 후세인과 달리 자국내 특법법정이 아닌 네덜란드 헤이그의 유엔전범재판소에서 열렸다는 것이다.
이 날 재판이 열린 장소는 후세인의 안방이나 다름없던 과거 집권 바트당사여서 권력의 무상함을 실감케 했다. 재판정은 이라크 행정부와 국회, 미국 대사관 등이 위치한 안전지대(그린 존) 안에 있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미군과 이라크군은 폭발물 탐지견까지 동원해 주변을 탐색하는 등 철통경비를 펼쳤다. 재판을 참관한 기자들이 전한 재판정 내부는 과거의 대연회장을 방불케 했다. 천장에는 6개의 수정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었으며, 재판관 뒤편 벽은 코란의 한 구절인 ‘인민을 재판하려면 공정하게 하라’가 황금색 글자로 장식돼 있었다.
아민 재판장은 변호인단의 3개월 재판 연기요청을 일부 받아들여 40일간 휴정한 뒤 11월 28일 재개할 것을 선언했다. 휴정을 받아들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학살자의 친척을 비롯한 증인들이 법정에 출두해 증언하기를 두려워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검찰측이 유죄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변호인단 재판정 해산 요구할 듯
한 편의 드라마 같은 후세인 재판을 보는 반응은 이라크 내부의 종파나 종족에 따라 엇갈렸다. 두자일에 사는 아킬 알우바이디는 “이 재판이 죽은 자를 살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 안에 있는 분노의 불길을 잡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바그다드의 시아파 거주지인 카지미야의 건설노동자 살만 자분 샤난은 “후세인이 처형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티그리스 강 건너편 수니파 거주지인 아자미야의 엔지니어인 사합 아아드 마루프는 현 시아파 정부지도자와 비교해 “사담이 그들보다는 악마가 아니다”라며 “사담은 유일한 정통 지도자”라고 추켜세웠다. 일부는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다. 바그다드 아자미야에 사는 움 압둘라는 재판을 다 보지 못하고 식료품가게로 발길을 옮겼다. 후세인 통치기간의 공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압둘라는 “새장(철창)에 갇힌 강력한 지도자를 보니 가슴이 아프다. 그가 옛 부하들에게 내가 여전히 이라크 대통령이라고 할 때 소름이 끼쳤다”고 말했다.
미국 주도하에 특별법정에서 진행되는 재판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많다. 영국의 법률전문가이자 변호사인 조나단 골드버그는 CNN 인터뷰에서 “미국이나 유럽의 기준에서 보면 공정한 재판이 아니다. 모든 것이 서커스 같다”면서 절차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국제법률감시기구인 국제배심원위원회의 니컬러스 호언 사무총장은 “미국 주도의 연합국에 의해 진행되는 이 재판이 독립적이고 공정한지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11월 28일 속개되는 재판에서는 유죄를 입증하려는 검찰과 무죄를 입증하려는 변호인단 간에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우선 검찰은 두자일 학살에 대한 유죄 입증에 최선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후세인의 여러 혐의 가운데 희생자가 두자일 사건보다 더 많은 사건을 제쳐두고 두자일 사건을 첫 대상으로 삼은 것은 다른 어떤 사안보다 증거확보가 쉽고 확고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라크법은 사형이 확정될 경우 30일 안에 집행하게 돼 있어 후세인은 두자일 사건만으로도 교수형에 처해질 수 있다. 결국 법적으로는 쿠르드족에 대한 학살 등 다른 혐의에 대한 유죄를 입증하기 전에 후세인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현재 변호인단을 이끌고 있는 이라크 출신의 카릴 둘라이미는 후세인의 무죄 주장은 물론 이번 재판부가 2003년 12월 미군 점령하에 구성돼 정통성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재판정의 해산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창과 방패’의 대결은 영국의 유명한 인권변호사이자 세계적으로 잘못된 판결 사건에 변론을 맡아온 앤서니 스크라이브너와 1972년 북아일랜드에서 발생한 ‘피의 일요일’ 사건의 변호인으로 유명한 데스 도허티가 앞으로 변호인단에 합류할 것으로 보여 흥미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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