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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주간경향

‘희망의 페달’ 지구를 완주하다(2005-12-09)



영국 청년의 자전거 세계일주… 자선기금 모금 위해 4년간 8만㎞ 누벼

두 바퀴로 가는 교통수단이 있다. 사람들은 자전거라고 부른다. 교통수단으로서 자전거는 어떤 나라에서는 ‘가난뱅이의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자전거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뛰어넘는다. 4년여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자전거 하나로 세계여행에 바친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국 청년 앨러스테어 험프리스(29)는 4년 3개월 동안 오로지 자신의 두 발로 페달을 밟아 5대륙 60개국, 약 8만㎞를 누볐다. 자전거로 지구를 두 바퀴 가까이 돌았으니 미쳤거나 대단한 모험가이거나 둘 중 하나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둘 다 아니다. 오히려 자전거 하나로 ‘역사’를 썼다는 사실에 경외심이 일어난다. 왜 그런지는 그의 여정을 따라가보면 알 수 있다. 그의 자전거 세계일주가 관심을 갖는 것은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결과’ 때문만은 아니다. 여행의 진정한 목적이나 지원팀 없이, 심지어 휴대전화조차 없이 철저히 혼자 해낸 ‘내용’ 또한 세계 최고이기 때문이다.

하루 경비는 1달러로 버텨

험프리스는 영국 에든버러에서 대학을 나오고 옥스퍼드대에서 교사자격 과정을 마친 평범한 청년이다. 전형적인 모험가 타입과는 거리가 멀다. 여행 중 에콰도르의 한 카페에서 만난 현지인은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그 몸으로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체격도 별로라는 증거다. 그런 그가 사귀던 여자친구도 내팽개치고 자전거 세계일주를 떠나게 된 이유는 뭘까.

“그동안 인생이 너무나 쉬웠다. 대학졸업하고 직장만 구하면 됐다. 뭔가 조금 더 힘들고 의욕을 돋우는 일을 하고 싶었다.”

2001년 8월 25일 험프리스는 고향인 영국 요크셔의 에어튼에서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이렇게 시작된 여정은 유럽-중동-아프리카 종단-대서양 횡단(배)-남아메리카-중앙아메리카-북아메리카-알래스카-태평양 횡단(배)-시베리아-일본-아시아-중앙아시아-중동-유럽을 거쳐 다시 영국으로 이어져 2005년 11월 23일 밤 끝났다. 29세 생일을 사흘 앞둔 날이다.

험프리스의 여정은 그의 홈페이지(www.roundtheworldbybike.com)에 잘 나타나 있다. 그가 1년에 한 번꼴로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에 기고한 글이다. 글 속에는 여행 고비고비마다의 느낌과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 지난한 여정이 묻어 있다. 여행이 사람을 얼마나 성숙하게 하는지도 읽을 수 있다.

여행 1년 만에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쓴 글엔 혼자 자전거 여행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따분하고 짜증나는 일인지 잘 묘사돼 있다. 그는 1년 동안 두 차례 자전거 여행을 중단할 뻔한 고비를 맞았지만 그럴 때마다 “만약 자전거 여행을 중단한다면 영원히 나 자신에게 실망할 것”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대륙에서 대륙으로 이동할 때 그는 ‘여행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여기며 용기를 얻었다. 아프리카의 최남단인 남아공의 케이프 타운에서 요트를 타고 남아프리카를 출발할 때 환송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장을 여는 시작”이라고 썼다.

인생의 새 출발점에 다시 서다


그의 여행은 ‘호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루 여행경비는 1달러에 불과했다. 풍요의 대륙 북미에서조차 3달러로 버텼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음식이나 물은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을 정도로 신경썼다. 어떤 때는 열흘치 식량과 18ℓ의 물을 자전거에 싣기도 했다. 잠자리는 종종 친절한 현지민 집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텐트 속. 가끔은 하수도관이나 해안, 다리밑, 화장실, 금광이나 탄광, 5성 호텔 등도 그의 잠자리가 됐다.

그의 고통의 여정은 이어진다. 캐나다에서 5m 앞에서 곰 사진을 찍던 일, 러시아 시베이라에서 술취한 강도를 만난 일, 남아공 케이프타운에 도착했을 때 현지 언론은 ‘용감무쌍한 젊은 영국 모험가’라고 찬사를 보냈지만 정작 요트를 타고 남아프리카로 떠나던 첫날밤 배멀미 때문에 뱃전에서 구토를 했던 기억, 눈부신 소금평원인 남미 살라 데 우유니에서 추위에 떨며 보낸 밤, 콜롬비아와 파나마 사이의 80㎞ 정글인 다리엔 갭을 앞두고는 대양이 아닌 대륙에서 처음으로 자전거 페달에서 발을 떼야 했던 일….

그가 4년 3개월에 걸친 자전거 세계일주를 마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홈페이지에 올린 글은 유명인들의 자전거 예찬으로 시작한다.

“자전거 타기의 단순한 즐거움과 견줄 만한 것은 없다.”(존.F.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자전거 타는 어른을 보면 인류의 미래에 대해 절망하지 않는다.”(공상소설의 아버지 H.G. 웰스)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자신에게 보내는 찬사인가. 하기야 이보다 더 좋은 피날레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고통 끝에 목표를 달성했으니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다.

험프리스가 자전거 세계일주에 나선 것은 단순히 일상탈출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더 큰 목적은 영국의 자선단체인 ‘호프 앤 홈스 포 칠드런(Hope and Homes for Children)’ 자선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이 단체는 에이즈나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돕는 자선기구로 1995년 설립됐다. 대학시절 친구 아버지를 통해 이 단체를 알게 된 그는 진정한 자선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자전거 여행을 통해 모은 자선금액은 1만3000파운드(2만2600달러)였다. 당초 1마일당 1파운드씩 모금할 예정이었으니, 목표의 4분의 1 정도밖에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그는 자전거 세계일주가 끝난 뒤 자신의 여정을 담은 슬라이드쇼와 강연 등을 통해 계속 모금활동을 할 생각이다.

장래희망이 교사인 그는 여행지의 수많은 학교를 찾아다니며 여정을 담은 사진을 보여주고 모험담을 소개하면서 세계와 함께 호흡했다. 자선기금모금에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현지민들에게 다양한 문화를 체험케 하는 효과와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 남을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계기를 주었다. 험프리스는 세계일주를 마무리할 즈음 영국의 일간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거의 끝나간다고 하니 엄청난 흥미와 함께 슬픈 감정도 생긴다. 그러나 자전거 여행이 끝나는 것이 내 인생이 끝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안다.”

그는 다시 출발점에 섰다. 그의 바람대로 교사가 될지, 여행작가가 될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는 항상 출발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