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미국이 시리아 내 친이란 민병대 시설을 공습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첫 군사작전이었다. 앞서 있었던 일련의 이라크 내 미군 기지 공격에 대한 보복이었다. 2001년 10월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미국과 연합군이 하루 평균 46차례씩 감행한 수십만 건의 공습 중 하나였지만 관심이 집중됐다. ‘미국이 돌아왔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바이든의 약속과 배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안에서도 비난이 쏟아졌다. 바이든은 군사작전 감행 근거로 자위권을 보장한 유엔헌장(51조)을 내세웠다. 하지만 더 확실한 근거가 있었지만 들먹이지 않았다. 바로 ‘무력사용권한(AUMF)’이라는 법이다.
이 법은 2001년 9·11 테러 일주일 뒤 발효됐다. 이 법의 핵심 조항은 미 역사상 가장 위험한 문장으로 불린다. ‘대통령은 2001년 9·11 테러 공격을 계획·허가·자행·방조했다고 결정한 국가·단체·개인에 대해 필요한 모든 적절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 의회의 사전 통보나 승인 절차 없이 무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한 이 문장 덕분에 이 법은 대통령에게 백지수표나 다름없다.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은 이를 근거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그해 10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부시는 그 후 파키스탄, 소말리아, 예멘 등지로 전장을 확대했다. 버락 오바마의 2014년 이슬람국가(IS) 공격, 도널드 트럼프의 2017년 시리아 공습 및 2020년 초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살해도 이 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바이든도 예외가 아니었다.
AUMF는 전쟁권한을 둘러싼 대통령과 의회 간 오랜 갈등의 부산물이다. 미 대통령은 군통수권자이지만 의회 승인 없이는 미군을 투입할 수 없다. 헌법은 전쟁권한을 명백히 규정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에게는 총사령관으로서의 전쟁 수행권을, 의회에는 전쟁선포권을 부여하고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전쟁권한을 확대하려는 대통령과 이를 제한하려는 의회 간 힘겨루기 이어졌다. 의회가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한 대표 사례가 1973년 ‘전쟁권한 결의안’(WPR)’이다. 이에 따라 대통령은 의회의 선전포고 없이 급박한 상황에서 미군을 투입할 경우 48시간 안에 의회에 통보해야 하고, 해외에서 60일 이상 군사작전을 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반면 AUMF는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해준 조치다. 1991년 걸프전 때, 9·11 테러 직후, 이라크 침공을 앞둔 2002년 등 세 차례 만들어졌다. 1991년 AUMF는 사문화됐지만 나머지 두 건은 발효 중이다. 그동안 미 대통령은 당파에 관계없이 AUMF는 넓게, WPR는 좁게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여왔다.
2001년 AUMF는 법으로서 심각한 결격 사유가 있다. 이라크 결의안으로 불리는 2002년 AUMF과 달리 공격 대상도 특정하지 않았다. 일몰 조항도 없다. 아무런 제약이 없다보니 국제 테러리즘과 관련된 모든 나라, 조직, 개인에게 확대 적용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미국의 군사작전 범위는 당초 대상인 아프가니스탄(국가), 알카에다와 탈레반(조직)과 그 조직원(개인)을 넘어 예멘과 소말리아, 이슬람국가(IS) 등으로 확대됐다. 2002년 관타나모 수용소 설치, 2002년 국가안보국(NSA)의 불법 감시, 테러 지원국 내 미군 주둔 등 목적에도 이 법을 활용했다. 무엇보다도 이 법의 가장 큰 맹점은 테러가 존재하는 한 유효하다는 점이다. 테러리즘은 특정할 수 있는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악관이 지난 5일 2001 AUMF를 폐기·대체하는 방안을 의회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이 첫 군사작전을 한 지 8일 만이다. 그동안 일부 의원들이 AUMF를 폐기·축소·제한하려 시도했지만 자체 무산되거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물거품이 되기 일쑤였다. 대통령은 AUMF를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고, 의회는 대통령의 확대 적용을 내버려두는 경향 때문이다. 바이든이 직접 이 문제를 다루겠다고 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AUMF를 확대하려는 대통령은 있어도 폐기를 고심한 대통령은 없었다. 오바마는 2015년 IS에 대한 군사작전을 위해 3년 기한의 새로운 AUMF를 제안했으나 의회의 반대로 무산됐다.
미국이 역사상 가장 긴 전쟁에 들어간 지 올해로 20년이 됐다. 바이든은 대외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군사행동보다 외교를 강조했다. 그가 AUMF를 폐기한다면 최장 전쟁을 끝낸 평화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이 돌아왔다’는 그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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