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근로기준법이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 점을 악용해 일부러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만드는 행태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노동자는 실제로는 영세하지 않은 기업에 근무하고 있는데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채 권익을 침해당하고 있다. 불법 사업주에 대한 엄단과 노동자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노동자들의 협력조직인 권리찾기유니온은 지난 10개월간 제보받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사례 80건을 1일 공개했다. 가장 흔한 일이 한 사업장을 서류상 2개 이상으로 쪼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하는 것이다. 지난 2월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A플라스틱공장은 노동자 1000여명이 검진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해고된 노동자 10여명이 부당해고에 항의했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이라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A공장 사업주가 노동자들을 지휘·감독했지만 근로계약 당사자는 B사의 대표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서류상 사업장 쪼개기로 법망을 피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수법을 쓴 사업장은 전체 고발 80개 중 73.8%인 59개나 됐다. 일하는 장소와 4대보험이 등록된 업체를 다르게 올리는 수법으로 상시 노동자 수를 축소해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하는 업체도 28건으로 나타났다. 실제로는 영세하지 않은 업체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만들어 법적인 의무를 다하지 않는 불법행위가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악덕 사업주의 농간으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입는 피해는 크다.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아 시간외·야간근로수당 등 가산수당 미지급, 연차휴가 미부여, 4대보험 미가입, 무급휴직 강요, 부당해고 등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업장이 전체의 80%나 된다고 하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더 이상 법망을 피해 불법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전면 실태조사와 함께 강력 단속 실시 등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국회 또한 근로기준법 11조를 포함한 전면적 법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영세 사업주를 배려할 수밖에 없더라도 근로기준법 11조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양산하는 합법적 통로가 되고 있다는 점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힘없는 노동자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5인 미만 사업장도 포함시키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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