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역사에서 여왕은 6명뿐이다. 메리 1세(1516~1558)가 처음이고, 엘리자베스 1세·메리 2세·앤·빅토리아 여왕을 거쳐 현재의 엘리자베스 2세가 1952년부터 왕실을 이끌고 있다. 여왕 남편의 공식 칭호는 ‘The Prince Consort’다. 첫 여왕 메리 1세의 남편인 펠리페 2세는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이끈 국왕으로 더 유명하다. 엘리자베스 1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여왕의 남편으로 부를 수 있는 첫 인물은 앨버트공이다. 대영제국 최전성기를 이끈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이다. 그는 미혼으로 즉위한 빅토리아 여왕과 결혼한 뒤 죽기 전까지 21년간 보필했다. 하지만 결혼 17년이 지나서야 여왕의 남편 칭호를 받을 정도로 푸대접을 받았다.
세계 최장수 군주인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공이 100세 생일을 62일 앞두고 지난 9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필립공이야말로 진정한 여왕의 남편이라 부를 만하다. 그는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한 날부터 2017년 8월 왕실 업무에서 은퇴할 때까지 여왕의 든든한 조력자로서 역할을 다했다. 부부의 연을 맺은 73년5개월 중 69년10개월을 함께한 것이다. 필립공은 해군 최고사령관과 육해공군 원수직도 수행했다. 여느 왕실처럼 자식들이 이혼하고 구설에 휘말리는 등 풍파를 겪었지만 부부간에 큰 불화도 없었다.
“공작이란 작위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을 거네… 공주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일, 그보다 더한 애국은 없을 걸세.” 엘리자베스 2세 일대기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에서 조지 6세 국왕이 사위 필립공에게 하는 말이다. 필립공은 장인과의 약속대로 “여왕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을 임무로 살았다. 그는 여왕의 남편이 되기 위해 경력 등 많은 것을 포기했다. 숙명이었다. 성(姓)을 영국식으로 바꾼 것은 그리스와 덴마크 왕족 출신인 그에게도 한이 된 듯하다. 오죽하면 “이 나라에서 자식들에게 자기의 성을 물려주지 못하는 남자는 내가 유일할 것”이라고 했을까.
그는 ‘외조의 왕’으로 불린다. 영국 왕실사에 가장 긴 외조 기간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외조가 없었다면 세계 최장수 여왕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일하는 여성이 많은 현대사회에서 외조야말로 남성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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