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지난 4일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한·일관계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는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또 중국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에 대해서는 중국이 CPTPP가 요구하는 높은 수준을 충족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1년여 전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북한을 언급하면서도 한국은 쏙 뺐다.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메시지가 없어 유감스럽다.
기시다 총리가 취임 전부터 아베 신조(安倍晋三) 노선을 계승하겠다고 밝힌 터라 한국 무시는 어느 정도 예상됐다. 기시다 총리는 문재인 정부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를 비판한 것은 물론 2019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강경 입장을 보였다. 이번 내각을 꾸리는 과정에서도 아베 전 총리가 임명한 외무상·방위상을 유임시키고, 관방장관에는 2012년 일제하 위안부 모집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내용의 의견 광고를 아베 전 총리와 공동으로 미국의 지역신문에 낸 인물을 앉혔다. 게다가 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도 북한 납치 문제 해결에 대한 협조만 구했을 뿐 한·일 문제는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데 당분간 관심이 없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의 취임에 맞춰 축사를 보내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했다. 한국 내 일본기업의 자산매각과 수출 규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등 현안을 푸는 방법은 대화 외에는 없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한·미·일 협력은 필요하다.
기시다 총리는 자민당 내에서 주변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온건파로 통한다.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을 오로지 한국 정부에 돌릴 것이 아니라 실사구시의 태도로 접근한다면 문제를 풀지 못할 것도 없다. 모테기 외무상은 이날 첫 기자회견에서 “이웃 나라와의 관계가 중요하다”며 어려움 속에서도 “중국, 한국 등과 고위급 의사소통을 계속해 왔다”고 소개했다. 양국 정부 모두 대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오는 31일 앞당겨 실시되는 일본 총선 이후 기시다 총리가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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