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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경향의 눈

[경향의 눈27] ‘플린트 수돗물 납 오염 사태’와 정치 실패의 대가(211118)

전 세계의 이목이 영국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쏠려 있던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에서 희소식이 전해졌다. 7년 전 ‘플린트시 수돗물 납 오염 사태’와 관련해 시민들이 주정부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6억2600만달러의 보상 합의안을 승인한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높은 관심 탓에 크게 조명받지 못했지만 세계 환경오염 역사에 획을 긋는 뉴스였다. 인구 10만명에 불과한 미 북동부 미시간주의 소도시에서 발생한 수돗물 납 오염 사태는 현대 미국에서 일어난 최악의 환경재앙 중 하나로 불릴 만큼 관심을 끌었다. ‘제2의 카트리나’ 논란을 부를 정도로 미국의 뿌리 깊은 인종적·경제적 불평등뿐 아니라 사후 처리 과정에서도 총체적인 문제점을 드러내는 등 정치적 파장이 컸기 때문이다. 

비극은 2014년 4월 플린트시가 비용 절감을 이유로 기존 수돗물 공급처를 휴런호 물을 상수원으로 쓰는 디트로이트시에서 플린트강으로 바꾸며 시작됐다. 문제는 플린트강은 산성도가 높아 식수로 쓰기 적합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상수원이 바뀌면서 시작된 부작용은 탈모, 발치, 발진 등을 넘어 납 중독으로까지 번졌다. 부식된 수도관을 통해 납 성분이 수돗물에 침출된 것이다. 한번 몸 안에 흡수된 납 성분은 평생 빠져나가지 않는다. 지능 저하는 물론 폭력 충동 등 여러 장애를 일으킨다. 주정부는 사건 발생 1년 반이 지나서야 납 오염을 인정하며 상수원을 다시 되돌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수돗물 오염에 따른 급성 폐렴으로 최소 12명이 사망하고 80명이 고통을 받았다.

플린트 사태는 기존 환경오염 사건과 확연히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환경오염의 주체다. 대부분 환경재앙의 주범은 기업이었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2000)에서 발암물질 크롬을 배출한 회사는 미 최대 전력회사 PG&E였다. 마크 러펄로가 <다크 워터스>(2020)에서 고발한 독성화학물질 과불화옥탄산(PFOA)을 유출한 회사는 세계적인 화학기업 듀폰이었다. 돈벌이만 된다면 주민의 삶과 인권, 환경파괴 등에 아랑곳하지 않는 게 거대자본의 속성이다. 하지만 플린트 사태 뒤에는 주정부가 있었다. 주민을 위해 봉사할 주정부가 주민을 기만한 것이다. 정치의 실패라 할 수 있다. 기업의 이익을 대변해온 공화당 출신의 릭 스나이더 주지사 탓이 크다. 플린트는 인구의 60%가량이 흑인이고, 40% 이상이 극빈자다. 그에게 이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플린트 수돗물이 GM 엔진공장 운영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휴런호로 변경했다. 명백한 인종차별적 처사였다. 플린트가 백인 위주의 도시였다면 불가능했을 터이다.

플린트 수돗물 사태의 정치 실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첫 흑인 대통령이던 버락 오바마조차도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대응에 실패했다. 이 사실은 마이클 무어 감독의 2018년 다큐멘터리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에서 잘 드러난다. 11/9는 2016년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한 날을 의미한다. 트럼프 승리의 원인을 찾던 무어는 2016년 5월 자신의 고향 플린트를 방문한 오바마에게 앵글을 맞춘다. 오바마는 사태 해결을 기대하는 주민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는 연설 도중 “물 한 잔 마시고 싶다”고 했다. 주민들은 ‘생수’를 외쳤음에도 그는 수돗물을 고집했다. 하지만 그는 입만 댄 채 마시지 않았다. 스스로 이목을 끌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고 했지만 명백한 정치적 쇼였다. 쇼는 스나이더 주지사와 함께한 자리에서도 반복됐다. 그의 방문으로 재난지역 선포를 기대했던 주민들은 좌절했다. “그는 나의 대통령으로 이곳에 왔지만 떠날 때는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한 플린트 운동가의 말만큼 배신감을 보여주는 말은 없다.

플린트 사태가 초래한 정치적 대가는 컸다. 민주당은 2016년 대선에서 공화당에 패배했다. 특히 미시간주에서는 1만704표차(0.23%)로 석패했다. 민주당이 미시간주에서 공화당 후보에게 진 것은 1988년 이후 처음이다. 물론 민주당의 아성인 플린트가 포함된 제네시 카운티는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트럼프 당선이 플린트 사태 때문만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문제는 공화당 주지사가 일으켰지만 주민들은 민주당에 책임을 물은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플린트 사태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책임정치의 중요성이다. 정치인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외면하면 이들 또한 기득권 정치인을 배척하기 마련이다.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