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년 전 ‘오바마의 짐 갈라진 미국’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 조지 W 부시 행정부보다 버락 오바마 때 더 두드러졌다는 내용이었다. 이전보다 더 보수화한 공화당 지지자들이 원인이었다. 갈수록 그 추세는 심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임기말 국정지지도에 대한 양당 지지자 간 격차는 85%포인트였다. 역대 최대다. 오바마 임기말 때보다도 10%포인트 가까이 높다. 조 바이든은 사상 최악의 갈라진 미국이라는 짐을 안고 출발했다. 그의 당선 첫 일성이 사회 양극화 해소인 것은 당연하다. 지금은 어떨까. 새해 벽두 공개된 워싱턴포스트·메릴랜드대 여론조사 결과는 암울하다. 트럼프 지지자 69%는 아직도 바이든이 정당하게 선출되지 않았다고 여긴다. 초유의 대선 불복과 그에 따른 1·6 의회점거 폭동이 남긴 크나큰 상처임은 말할 것도 없다. 갈라진 미국의 현주소다.
1·6폭동 이후 미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단어가 ‘내전’이다. 지난해 9월 노스캐롤라이나주 한 지역 신문에 “적들이 문 앞에 있다”며 “내전 중”이라는 주장을 담은 글이 실렸다. 이런 주장은 공화당 장악 주에서 흔하다. 1·6폭동 직후 미국인 46%는 내전 가능성에 동의했다. 1년이 지난 지금 공화당 지지자 40%는 정부 상대 폭력을 정당하다고 믿고 있다. 존 페퍼 외교정책포커스 소장은 미국의 현 상황을 1990년대 내전 직전의 유고연방에 비유했다. 민주당의 미국과 공화당의 미국으로 쪼개지기 직전이라는 의미다. 공화당의 극우파 하원의원 마저리 테일러 그린은 아예 갈라서자고 주장하고 있다.
내전 우려 징후는 1·6폭동 훨씬 전부터 있었다. 2013년 5월 매우 특이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공화당 지지자 44%가 자유 수호를 위해 무장반란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이다. 이는 2012년 말 발생한 샌디훅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후 총기규제를 강화하려는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공화당 지지자들의 반감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당시엔 주목받지 못했다. 일부 논평가들만 공화당 조롱 소재로 활용했을 뿐 대다수는 과장이라며 믿지 않았다. 트럼프 집권 이후에도 2020년 대선에서 그가 패배할 경우 대선 불복에 이은 쿠데타, 내전 가능성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공화당의 백인우월주의자인 스티브 킹 전 하원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2019년 페이스북에 “사람들이 또 다른 내전을 말하고 있다”면서 “한쪽은 실탄 8조발을 가지고 있는데, 과연 누가 이길까”라는 글을 올렸다. 그 결과가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준동과 1·6폭동이다.
향후 전개될 내전 시나리오는 이렇다. 대전제는 트럼프의 2024년 대선 재출마다. 트럼프가 압도적으로 승리하면 가능성은 낮다. 반면 트럼프가 큰 표차로 지면 대선 불복-폭동-내전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연방군이 시민을 향해 총구를 겨눌 수밖에 없다. 설마 이런 상황이 올까. 미 해밀턴대의 에리카 드 브루인 교수는 “말이 안 되지만 가능성의 영역에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위험 신호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급증하는 총기판매량과 공화당 장악 주에서의 투표방해공작 등이다. 올해 중반기쯤 예정된 미 대법원의 무제한적인 총기소유 판결 결과도 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는 변수다. 어쩌면 1·6폭동은 내전 준비를 위한 연습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모든 것이 내전을 향하고 있는데도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보 미국도, 보수 미국도 없다. 미합중국만 있다.” 17년 전 오바마를 ‘통합의 아이콘’으로 만들어준 말이지만 갈라진 현실 앞에서 공허할 뿐이다. 일주일 뒤 취임 1주년을 맞는 바이든에게도 들어맞는다. 바이든은 미국 안에서 내우외환 상태에 처해 있다. 양극화 해소 약속은 빈말이 된 지 오래다. 가장 큰 책임은 사사건건 반대하는 공화당에 있다. 바이든이 애를 쓰면 쓸수록 공화당의 반발도 커지는 양상이다. 적은 공화당만이 아니다. 민주당에도 있다. 천문학적 재원을 투입해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 정치적 양극화를 막으려는 바이든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민주당 상원의원(조 맨친)이다.
남북전쟁을 앞둔 160년 전처럼 또다시 내전의 그림자가 미국을 뒤덮고 있다. 2024년 미 대선까지는 3년이 채 남지 않았다. 세상사가 그렇듯 위기의 징후는 늘 존재하지만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최악은 위기를 알고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이 그런 때일지도 모른다. 적은 내부에, 그것도 문 앞까지 왔는데도 미국은 세계 경찰 노릇에 여념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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