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현지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목적을 둔 여행개념이 ‘착한여행’이다. 서울시 예비 사회적기업 착한여행이 주최하고 경향신문이 후원한 ‘착한여행-섬시리즈’ 첫 여행지인 필리핀 세부·보홀섬을 여행객들과 함께 지난달 25~30일 찾았다. 맹그로브 묘목 심기와 돌고래 구경, 세상에서 가장 작은 타시어 원숭이 보기 등 생태관광과, 푼타 크루즈 공연과 같은 전통문화 체험 등 주민들의 문화와 삶을 이해하는 일정으로 짜였다. 섬시리즈는 일본 오키나와, 말레이시아 쿠칭, 인도네시아 발리, 대만으로 이어진다.
■ 100만그루 맹그로브 심기에 동참
참가자들이 코르도바 부악송 해변에서 맹그로브 묘목을 심고 있다. 세부·보홀섬 | 조찬제 기자
맹그로브는 바닷물에 사는 대표적인 나무다. 해안 생태계 균형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맹그로브는 육지의 침전물을 막아 산호초를 보호하고, 썩은 맹그로브는 해초와 산호의 필수 영양원을 공급한다. 가지는 주민들에게 땔감으로, 나무껍질은 타닌 공급원으로 쓰인다. 뿌리는 물 정화제 역할을, 숲은 철새들의 휴식처이자 해일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어민들에게는 조개와 게, 새우 등 해산물의 공급원이다. 1918년 45만㏊에 달하던 필리핀 내 맹그로브 숲은 개간 등 다른 용도로 전용되면서 93년 14만㏊로 급감했다. 현재 세부섬엔 126.6㏊, 보홀섬엔 9292.2㏊의 숲이 남아 있다. 세부섬의 ‘100만그루 맹그로브 심기 행사’는 지난해 12월에 완료됐다. 올해부터 다시 100만그루 맹그로브 심기 운동에 돌입했다.
맹그로브 묘목 심기는 간단했다. 한 뼘 깊이만큼 진흙을 파낸 뒤 묘목을 심고 주변을 꾹꾹 눌러주면 된다. 모든 묘목이 그렇듯 맹그로브도 심기보다 사후 관리가 중요하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맹그로브 나무 심기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CCEF의 애널리 파틴돌은 “심고 나서 2개월이 가장 중요하다. 그 기간에 매일 성장을 관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묘목의 생존 여부는 2년이 지나야 알 수 있다고 한다. 생존율은 약 75%. 참가자들은 어린 맹그로브가 끝까지 건강하게 잘 자라주길 한마음으로 기원하면서 정성껏 심었다. “나는 100만그루 맹그로브 심기 운동에 동참했다”는 내용이 적힌 인증 밴드를 손목에 찬 참가자들은 감개무량해했다. 이민석씨(33)는 “나의 작은 행동 하나가 도움이 돼 좋았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두 딸과 함께 온 김영식씨(38)는 여행 마지막 날 맹그로브 100만그루 심기 운동에 보태달라며 CCEF 관계자들에게 100달러를 기증했다.
맹그로브 묘목을 심은 참가자들이 ‘100만그루 맹그로브 심기에 동참했다’는 글이 적힌 인증 밴드를 손목에 차고 손을 한데 모으고 있다. 세부·보홀섬 | 조찬제 기자
■ 돌고래와 함께 춤을
파밀리칸섬 돌고래 및 고래 구경 투어(PIDWWT)의 조셀리노 바리투아 대표(앞)가 돌고래를 찾기 위해 바다 주위를 살펴보고 있다. 세부 보홀섬/조찬제기자
보홀섬의 중심도시인 탁빌라란에서 남쪽으로 약 15㎞ 떨어진 파밀라칸섬 인근 바다는 필리핀에서 가장 유명한 돌고래 및 고래 서식지다. 파밀라칸섬 일대가 돌고래를 관찰하는 생태관광지가 된 것은 불과 10년 전이다. 돌고래와 고래는 그 당시만 해도 섬주민들의 최대 수익원이었다. 돌고래 한 마리는 1000페소(약 3만원), 고래는 2만페소(약 60만원)에 팔렸다. 그러나 필리핀 정부는 돌고래 및 고래 보호를 목적으로 98년 3월 주민들과 상의 없이 돌고래 및 고래 사냥 금지 조치를 취했다. 돌고래 사냥을 평생의 업으로 살아온 주민들의 반발은 컸다. 한 주민의 끈질긴 설득으로 주민들은 2000년 2월 돌고래 보호에 동참했다. 그때부터 주민들은 돌고래 보호 감시자이자 생태관광의 안내자가 됐다.
6월29일 오전 5시30분. 졸린 눈을 비벼 뜬 참가자들은 탁빌라란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바클라욘항에서 돌고래의 비상을 볼 수 있다는 부푼 기대를 안고 작은 배에 몸을 맡겼다. 참가자 윤미향씨(33)는 밤새 돌고래와 안고 춤추는 꿈을 꿨다고 했다. 좋은 징조로 여겨졌다. 40여분간의 항해 끝에 돌고래 출몰지역에 도착하자 여행팀을 안내한 파밀리칸섬 돌고래 및 고래 구경 투어(PIDWWT)의 조셀리노 바리투아 대표를 비롯한 선원 4명의 눈빛이 더욱 반짝였다. 바리투아 대표는 10년 전 주민들을 설득해 돌고래 사냥을 포기하도록 한 주인공이다. 그는 당시 분개한 주민들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덩달아 신이 난 참가자들의 시선도 사방의 바다 위로 향했다. 그러나 돌고래 떼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날엔 돌고래 떼가 눈에 잘 띄었다고 했는데…. 그러기를 한 시간 남짓. 두 눈을 집중해 바다를 응시했지만 돌고래 떼는커녕 꼬리조차 보지 못했다. 실망이 컸지만 파밀라칸섬의 프리스틴 백사장에서 수영을 하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섬에 내려 수영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서쪽 바다에 돌고래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돌고래가 점프를 하고 있는 모습이 서너 차례 목격됐다. 참가자들은 서둘러 배에 올랐다. 그러나 돌고래는 간혹 꼬리부분만 드러낼 뿐, 물결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은 끝내 볼 수 없었다. 꼬리 부분이지만 ‘인증샷’을 찍는 데 성공한 참가자도 있었지만, 누구보다도 돌고래 보기를 기대했던 아이들의 아쉬움이 컸다.
■ 감동적인 푼타 크루즈 감시탑 건립 관련 공연
보홀섬 북서부 마리보족에서 본 ‘푼타 크루즈 문화공동체’의 공연은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했다. 6월28일 저녁 무렵, 공연을 앞두고 때마침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로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공연단은 우왕좌왕했다. 공연을 중단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한 공연단은 등불과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존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22분 동안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열정적인 연기를 펼쳤다.
‘18세기 중반 푼타 크루즈 지역에 모로 해적들이 침범한다. 주민들은 저항해보지만 해적들은 마을을 약탈한다. 주민들은 살해되고 노예로 잡혀가고 마을은 불태워진다. 비극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죽은 자의 장례식을 치르며 마을 재건에 나서는 동시에 또 다른 해적 공격에 대비해 훈련한다. 그리고 미래의 비슷한 비극을 겪지 않기 위해 서로 합심해 해적 감시탑을 만든다. 주민들이 감시탑의 완공을 축하하는 모습을 바다에서 지켜보던 해적들은 기습공격을 감행하지만 날개 단 수호성인 빈센트 페러가 나타나 이들을 물리친다.’
공연단은 보홀섬 최초의 지역에 기반을 둔 공연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히 단원들은 학생과 학교 중퇴자, 푼타 크루즈 환경단체 및 이 지역 시민단체 회원 가운데 2008년 8월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20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주말마다 푼타 크루즈 감시탑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정기공연을 하거나 특별공연을 하며 보홀의 풍부한 문화와 전통을 전하는 전수자 역할을 하고 있다.
보홀섬 캄부핫 마을에서 여성 주민들이 보여준 부리댄스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부리댄스는 부리라고 불리는 야자수 나무의 새순으로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흥을 부리기 위해 자연스럽게 추는, 일종의 노동무다. 캄부핫 어민조직이 직접 재배한 굴과 게, 새우 등 해산물을 점심식사로 먹은 여행팀에게 부리댄스는 식후에 먹는 디저트와도 같이 달콤했다.
캄부핫 마을 여성들이 노동부의 일종인 부리댄스 공연을 하고 있다. 세부 보홀섬 /조찬제 기자
■ 세상에서 가장 작은 원숭이 타시어
세계에서 가장 작은 원숭이인 타시어. 세부·보홀섬 | 조찬제 기자
전 세계에서 가장 작은 영장류의 하나인 타시어 원숭이를 만나러 가는 길은 의외로 쉬웠다. 보홀섬에서 가장 유명한 자연유산인 초콜릿힐로 가는 로복 강변 길목에 위치한 전시장에 ‘전시돼 있었다’. 산 속에 서식하고 있는 타시어 원숭이는 실제로 보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받고 있는 탓에 필리핀 정부가 관광객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이 지역에서만 전시를 허용한 것이다. 크기가 8~16㎝ 정도인 타시어는 야행성으로, 해발 700m까지 숲에 서식한다. 세계자연보존연맹(ICUN)이 86년 멸종위기종으로, 필리핀 정부는 93년 6월 특별보호종으로 각각 지정했다. 야생 타시어의 평균 수명은 24년이지만 포획 타시어는 절반인 12년에 불과하다. 관광객을 상대하다보니 수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 전시된 타시어는 만질 수는 없지만 사진을 찍을 수는 있다. 호기심에 사진을 찍었지만 타시어에게 못한 짓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밀려들었다.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애처롭기까지 했다.
여행 참가자들은 프로그램에 대체적인 만족감을 드러냈다. 남편과 초등생 아들, 유치원생 딸과 함께 온 윤미향씨는 “아이들이 돌고래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면서도 “지역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으로 생각해 만족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용기씨(21)는 “미리 프로그램 내용을 더 잘 알았다면 주민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줬을 텐데”라면서 오히려 준비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기도 했다. 모두에게 필리핀 주민들 속으로 한 뼘쯤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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