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가 8년 만에 또 다른 전쟁에 휘말렸다. 미국·영국·프랑스 주도의 리비아 군사개입은 국제정치 차원에서도 ‘국민보호에 대한 책임’이라는 새 개념이 적용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가 주저 끝에 발을 담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이 개념은 그동안 국제사회가 군사개입의 명분으로 내걸어온 인도주의적 목적이라는 큰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민간인 학살 방지라는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은 서방의 리비아 군사개입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몇 가지 점에서 비판을 사고 있다.
무엇보다도 개입의 목적이 불분명하다. 애매모호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내용 탓이다. 안보리 결의는 민간인 학살 방지를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인 학살 방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지 않다.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방국가 사이에서도 카다피 타도가 목적인지, 휴전이 목적인지 혼선이 일고 있다. 그 목표가 카다피 축출이라 하더라도, 이를 위해 반정부 세력을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엇갈리고 있다. 레슬리 겔브 전 미 국무부 차관보는 서방국가들이 리비아에 대한 일치된 목표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어느 누구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러시아 양국 관계자들이 다국적군의 대 리비아 작전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경향DB)
아랍국가들의 지지도 미미하다. 22개 국가로 구성된 아랍연맹(AL) 회원국 가운데 군사개입에 동참 의사를 밝힌 나라는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뿐이다. 인구 구성으로 보면 1%에 불과하다. 관심을 끄는 것은 리비아보다 먼저 반정부 시위를 경험한 인접국 튀니지와 이집트의 무관심이다. 보잘것없는 군사력을 가진 튀니지는 차치하자. 그러나 매년 미국으로부터 13억달러의 군사지원을 받는 이집트가 지원 의사를 밝히지 않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 ‘포스트 혁명’ 과정을 겪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서방으로서는 맥이 빠지는 일이다. 여기에 리비아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외면받고 있는 바레인과 예멘에서는 미국의 이중잣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분출하는 등 내부 균열마저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리비아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인도주의적 개입에도 나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불만의 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서방은 왜 리비아에 개입했을까. 미국을 비롯한 개입 당사자마다 제각각의 이유가 있을 터다. 리비아 석유를 둘러싼 쟁탈전이라거나 각국의 정치사정에 기인한다는 분석이 있지만 속사정을 알기는 쉽지 않다. 1990년대 인종학살 비극을 낳은 보스니아 내전 및 코소보 사태의 교훈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서방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에 의한 인종대학살을 초기에 막는 데 실패한 뼈아픈 기억이 있다. 뒤늦은 개입을 통해 밀로셰비치를 권좌에서 축출하는 데 성공한 서방은 이를 통해 신속하고 분명한 개입만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값비싼 교훈을 얻었다. 이는 2000년대 들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군사개입의 한 배경이 됐다. 서방은 리비아도 이런 과정을 밟길 기대하는 것일까.
하지만 서방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인도주의 개입의 함정’이다. 아프간과 이라크 개입은 정정불안과 폭력사태라는 또 다른 비극을 낳았다. 서방은 지금 리비아 반정부 세력으로부터 ‘해방자’라고 칭송받고 있지만 리비아 상황은 언제든지 그들을 ‘제국주의 침략자’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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