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1일. 미국 샌디에이고 앞바다에 정박 중이던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에 항모 탑재용 제트기 한 대가 착륙했다. 조종사 비행복을 입은 이가 내렸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얼마 뒤 양복으로 갈아입고 함상에 마련된 연단에 섰다. 연단 뒤 함교에는 ‘임무 완료(Mission Accomplished)’라고 쓰인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이라크에서 주요 작전은 끝났고 승리했다”는 그의 연설이 전 세계에 TV로 생중계됐다. 이라크 침공 40일 만에 승전선언을 한 그의 표정은 득의양양했다. 미 언론들은 이 순간을 부시의 ‘임무 완료 모멘트’로 불렀다.
공교롭게도 그로부터 정확히 8년이 지난 2011년 5월1일. 부시의 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한밤중에 백악관에서 TV 카메라 앞에 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사마 빈 라덴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미군 특수부대의 공격을 받고 사살됐다”고 밝혔다. 알카에다 지도자 빈 라덴을 제거했다는 소식에 미국인들은 환호했다. 가히 오바마의 ‘빈 라덴 모멘트’라 할 만한 순간이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 경향신문 DB | AFP연합뉴스
부시의 임무 완료 모멘트는 백악관이 기획한, 거대한 ‘정치적 쇼’였다. 당시 링컨호는 샌디에이고 해변에서 불과 48㎞ 떨어진 곳에 정박 중이었다. 그럼에도 부시는 전용헬기 대신 항모 탑재용 제트기를 이용했다. 전쟁 중인 군 총사령관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 이보다 더 극적인 장면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시의 ‘임무 완료’쇼는 정치적 실패작으로 귀결됐다. 이라크전은 끝나기는커녕 부시와 미국을 수렁에 빠뜨렸다. 부시는 비록 재선에 성공했지만 그의 지지도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퇴임을 앞둔 부시는 2008년 11월12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임무 완료 선언과 관련해 “그렇게(이라크 전쟁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말로 정치적인 쇼맨십이었음을 시인했다.오바마의 빈 라덴 제거 발표도 그에 못지않은 정치적 이벤트였다. 그러나 성급하게 승리를 선언한 부시와는 달리 오바마는 신중했고, 말을 아꼈다. 그는 빈 라덴 제거를 “정의의 승리”로 규정하고 테러와의 전쟁의 끝이 아니라고 말했다. 또 이슬람권을 향한 전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빈 라덴 사살 나흘 뒤 찾은 9·11 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의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침묵의 헌화’를 했다. 연설보다 침묵의 힘이 강하다는 점을 백분 활용한 것이다.오바마의 ‘빈 라덴 모멘트’는 아랍혁명 및 중동사태와 맞물리면서 중대한 국면을 맞고 있다.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시리아 등 아랍 각국에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폭발하고 있다. 미국의 중동 최대 우방인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레바논, 이란 등 적대세력에 포위돼 있다. 모두가 미국을 바라보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오바마의 19일 아랍혁명 및 중동에 관한 연설이 관심을 끈다. 연설에는 아랍혁명과 빈 라덴 이후의 미국 대외정책 방향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는 2009년 6월4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무슬림과의 화해를 선언했다. 당시 그는 중동에서 군사개입을 통한 정권교체는 하지 않는다는 점과 아랍국가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강조하며 부시 정권과 선을 그었다. 오바마는 ‘제2의 카이로 선언’으로 불리는 이번 연설에서 그에 대한 행동을 보여줄 차례다. 그렇지 못할 경우 부시의 ‘임무 완료’쇼가 대재앙으로 끝난 것처럼 ‘빈 라덴 모멘트’는 오바마에게 악재가 될 수 있다. 오바마의 ‘빈 라덴 모멘트’가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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