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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50]“같이 삽시다”(2016.07.19ㅣ주간경향 1185호)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장. 정의당의 노회찬 원내대표는 비교섭단체 대표 발언을 하기 위해 연단에 섰다. 그는 국회의원 세비를 절반으로 줄일 것을 제안했다. “세비를 절반으로 줄이더라도 근로자 평균임금의 3배, 최저임금의 5배 가까운 액수입니다.” 그리고 가슴팍에 꽂히는 말이 나왔다. “같이 삽시다. 그리고 같이 잘삽시다.” 그의 말은 이어졌다. “평균임금이 오르고 최저임금이 오른 후에 국회의원의 세비를 올려도 되지 않겠습니까. 국회가 먼저 나서서 고통을 분담하고 상생하는 모범을 만듭시다.” 그리고 7~8초의 침묵 뒤 ‘언어의 마술사’다운 한마디. “아무도 박수 안 치시네요.” 이 말을 한 그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고, 회의장 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같은 날 오후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5년 징역형이 선고됐다.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불법 집회 및 시위를 주도한 혐의였다. 집회 주도자에게 징역 5년형이 내려진 것은 1986년 전두환 정권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한 위원장은 굴하지 않았다. “투쟁”이라고 한마디 외친 그는 경위들 손에 끌려나갔다고 한다. 수감된 한 위원장은 면회자에게 “독재정부 때보다 노동자들의 저항에 대한 탄압은 더 가혹하고 교묘합니다. 이러한 탄압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태세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인에게는 “군대에 간 아들 제대하기 전 면회를 갈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소감을 전했다고 한다.

지난 5일 서울변호사회 지하 1층 대회의실. 상사의 부당 대우와 과중한 업무를 이기지 못해 지난 5월 중순에 자살한 서울 남부지검 김홍영 검사 사법연수원 동기회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동석한 김 검사의 어머니 이기남씨가 마이크를 들었다. “전국이 우리 아들 죽음 때문에 떠들썩한 지금도 유가족에게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고 오히려 뻔뻔스럽게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며 오리발만 내밀고 있는 XXX. 이러한 인간 밑에서 4개월 동안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을 우리 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엄마로서 억장이 무너집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자살을 둘러싼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지난 7일 오전 6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의 곱창가게 ‘우장창창’ 앞. 법원의 퇴거명령에 따라 강제집행을 하려는 용역들과 이를 막으려는 세입자 모임 회원들 간 충돌이 일어났다. 요즘 뜨는 동네에서 흔히 벌어지고 있는 임차인과 임대인의 갈등 현장 가운데 한 곳이었다. 이곳이 주목받은 이유는 건물주가 가수 ‘리쌍’이어서다. 리쌍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는 세입자 서윤수씨는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다같이 살면 안 되는 건지 리쌍에게 묻고 싶다”고 말했다.

노 대표, 한 위원장, 김 검사 어머니 이씨, 세입자 서씨의 말은 특권과 갑질이 판치는 세태에 대한 항거이자 공생을 향한 절규다. 네 사례에서 보듯 “같이 삽시다”라는 바람은 현실에서는 공허하다. 근본적으로 약자들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 말이 강자의 입에서 나오는 경우는 “우리가 남이가”라고 말할 때뿐이다. 김영란법 대상에서 국회의원이 빠진 것이 대표 사례다. ‘KBS 보도통제’ 당사자인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여당의 대표로 출마하는 것도 강자들만의 “같이 삽시다” 화법이다. 약자와 강자로 나누고, 각자도생에 맡겨야 하는 미래는 암울하다. 고통을 나누고, 손해를 감수하고, 서로를 보듬어주는 자세만이 살 길 아닐까. 정녕 “같이 삽시다”라는 말에 침묵 대신 “예”라고 화답하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