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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51]오웰이 지금 한국에 산다면(2016.07.26ㅣ주간경향 1186호)

존스의 매너 농장에는 메이저라는 늙은 수퇘지가 있다. 메이저는 농장의 동물들에게 인간의 착취와 학대에 대해 반란을 일으킬 것을 호소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 메이저의 가르침은 수퇘지 스노볼과 나폴레옹에게 전해진다. 그들은 다른 동물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농장을 장악한다. 농장 이름도 ‘동물농장’으로 바꾼다. 스노볼과 나폴레옹은 다른 동물들에게 ‘7계명’ ‘동물주의’를 가르치며 세력을 키워간다. 농장을 빼앗긴 존스는 이웃의 도움으로 농장을 되찾으려 하지만 실패한다. 스노볼과 나폴레옹 간 권력 다툼이 심해지지만 나폴레옹은 자신이 교육시킨 아홉 마리 개를 동원해 스노볼을 내쫓는다. 그 뒤 돼지들이 중심이 된 회의체를 만들어 권력을 장악한다. 시간이 갈수록 돼지들은 서서 걷고 채찍을 들고 옷을 입는 등 인간을 닮아간다. 마침내 반란 이후 세웠던 7계명을 뜯어고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로 바뀐다. 그리고 농장 이름도 다시 ‘매너 농장’으로 되돌린다. 돼지들은 더 이상 돼지가 아니었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줄거리다. 이 책을 다시 들여다 본 계기는 ‘오웰이 지금 한국에 산다면 <동물농장>을 어떻게 쓸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어서다. 당연히 “민중은 개·돼지”라고 해 물의를 빚은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원인 제공자였다. 공교롭게도 오웰이 70여년 전에 쓴 <동물농장>에는 많은 동물들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다름 아닌 돼지와 개다. 이 소설은 독재에 대한 풍자다. 구체적으로는 옛 소련 독재체제를 겨냥하고 있다. 메이저는 마르크스를, 나폴레옹은 스탈린을 각각 가리킨다. 스노볼은 스탈린에게 쫓겨난 트로츠키다. 아홉 마리 개는 스탈린의 앞잡이를 상징한다. ‘반란’은 1917년 러시아혁명을, 농장 주인 존스는 러시아 황제인 차르를 의미한다. 하지만 오웰의 독재에 대한 풍자는 이념과 시대를 뛰어넘는다. 70년이 지난 당시 상황은 지금의 한국 현실과는 다르다. 하지만 이 땅에서 그동안 벌어진 일들을 보면 그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권력은 1%인 정치인과 자본가 등의 손아귀에 놓여 있다. 나머지 99%인 개와 돼지는 그들에게 좌지우지되는 굴레에 갇혀 있다.

실제로 개·돼지를 향한 각종 권력의 횡포는 곳곳에서 판치고 있다. 재벌과 자본가들은 경호원과 조폭을 동원해 아들에 대한 보복 폭행을 서슴지 않았고, 노동자를 야구방망이로 구타한 뒤 거액의 맷값을 지불했으며, 운전사를 안하무인으로 취급하고 폭행하는 등 갑질을 일삼았다. 국가권력도 마찬가지다. 민중총궐기를 주도한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5년형을 선고하고, 시위하는 농민에게 물대포를 쏴 사경에 빠뜨렸다. 국정 최고 책임자 대통령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발표 후 들끓는 국민적 반발에 대해 “정쟁이 나면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누가 사드 정쟁에 불을 지르고 국민을 편가르는가. 이보다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는 사례가 있을까.

한국판 동물농장에서는 오웰 소설 속의 반란이 가능할까. 나 전 기획관은 본의 아니게 소설 속의 늙은 수퇘지 메이저가 됐다. 스스로 개·돼지로 추락하면서 1% 권력에 숨죽이고 있던 99%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나 전 기획관의 발언에 자극 받은 많은 이들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이 땅의 개·돼지들은 분노를 넘어 어떤 반란을 꿈꾸고 있는가.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