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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52]공화국의 위기(2016.08.02ㅣ주간경향 1187호)

“국가를 테러로부터 보호하는 데 필요한 예비조치이며 민주주의 보호를 위한 것이다.” “북한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해서다.” 참으로 익숙한 화법이다. 두 사람의 말이지만 한 사람의 말로 착각할 만큼 닮아 있다. 전자는 터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 선포 이유로 내세운 말이다. 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사드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한 말이다. 언론들은 에르도안의 비상사태 선포를 ‘역(逆)쿠데타’라고 부른다. 반대파 제거를 정당화하기 위해 쿠데타를 이용한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의 언급에는 ‘국민에게 싸움걸기’라는 조롱이 붙는다. 터키 국민은 한국을 ‘칸가르데쉬 코리아’, 즉 ‘피를 나눈 형제’라고 부른다고 한다. 여러모로 닮은 한국과 터키가 위기에 빠져 있다. 공화국의 위기다.

터키의 위기 징조는 비상사태 선포로 정점에 올랐다. 7월 15일 밤에 일어난 군부 쿠데타는 맨몸으로 탱크를 막아선 남성을 비롯한 터키 국민들의 저항으로 실패했다. 세계가 환호했다. 하지만 실패한 쿠데타 후폭풍에 세계가 전율하고 있다. 검거선풍 탓이다. 20일 비상사태를 선포할 때까지 직위해제한 인사가 6만명을 넘었다. 군 장성, 판·검사, 공무원 등 쿠데타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 지지자들이다. 에르도안은 대통령이 된 후 서방으로부터 세속주의 국가 터키를 이슬람화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비상사태 선포로 3개월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게 된 그에게 의혹의 눈초리가 쏠릴 수밖에 없다. 이미 1923년 터키공화국 수립 후 사라졌던 ‘술탄’과 ‘칼리프’라는 말이 그의 이름 앞에 붙고 있다. 터키가 93년 만에 다시 오스만제국으로 회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이것이 쿠데타가 에르도안의 자작극이라는 음모론마저 나오고 있는 터키공화국 위기의 실체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강행 입장을 보이고 있는 정부의 태도는 누그러질 기세가 없다. 박 대통령이 21일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쏟아낸 발언은 그 절정을 보여줬다. 예의 안보위기론을 반복했고, 불통정치를 재확인시켰다. 외부세력 프레임은 외부세력이 불순세력으로 대치됐을 뿐 더 견고해졌다. 사드 논란 중에 터져나온 우병우 민정수석 비리의혹에는 바람막이를 자처했다. 박 대통령이 우 수석을 감싸는 것은 청와대 수장으로서 가능한 일이고,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를 내쳤다가는 당장 레임덕에 빠질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명백한 위법행위에 눈감고 당사자를 두둔하다가는 뒷감당할 수 없는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위기에 빠진 정부가 손쉽게 선택하는 길이 있다. 경찰력을 동원하는 일이다. 즉 대화보다는 법·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폭력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흔히 정당성을 잃은 권력이 쓰는 수법이다. <공화국의 위기>를 쓴 한나 아렌트는 “시민들의 견해에 바탕을 둔 권력이 시민적 지지를 잃어갈 때 발동하는 것이 폭력”이라며 권력과 폭력을 구분했다. 역사적으로 위기에 빠진 공화국을 구한 것은 시민들의 저항이었다. 박 정권은 사드 논란과 우 수석 비리의혹이라는 수렁에서 헤어나오기 위한 방편으로 폭력에 의탁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공화국의 위기 징조이며, 시민불복종을 부르는 일이다. 정권 유지를 위해 국민을 기만하는 박 대통령이 공화국의 회복에 관심이 있을까마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1조 1항을 지키기 위한 시민의 저항은 정당하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