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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59]‘악마의 증명’ 강요 사회(2016.10.04ㅣ주간경향 1195호)

 ‘악마의 증명’이라는 말이 있다. 어떠한 사실이나 인과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한데도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자가 입증해야 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20세기 중반 미국을 뒤흔든 ‘매카시즘’ 광풍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는 1950년 2월 초, “국무부 안에 공산주의자가 205명이 있으며, 지금도 근무하면서 정책을 만들고 있다”는 폭탄발언을 했다. 상원은 위원회를 꾸려 조사에 들어갔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매카시가 감춰진 엄청난 진실을 발견한 것처럼 떠벌린 게 거짓임이 드러난 것이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정부 당국자가 ‘정부 부처에 공산주의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매카시의 주장을 조사위가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정상적이라면 상원은 매카시에게 ‘정부 부처에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요구했어야 했다. ‘악마의 증명’ 덫에 걸려 입증책임을 뒤집어써야 했던 당국자들의 고충은 물론 미국이 겪어야 했던 갈등과 비용은 천문학적이었다. 매카시즘은 반공주의 시류에 편승한 매카시의 소영웅주의가 빚어낸 결과물이었지만, 위정자들이 비이성적이고 반지성적일 때 벌어질 수 있는 경고로 회자된다.

경주 강진 이후 한국은 ‘악마의 증명’을 강요하는 사회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과학 담당 후배기자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제시하면 사고가 날 게 확실하다는 증거를 가져오라고 한다. 원전을 취재하다 보면 늘 이런 식의 말이 나온다.”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 만하다. 당연히 원전의 안전성을 입증할 책임은 정부나 운영기관인 한국수력원자력에 있다. 그러므로 “활성단층이 아니라는 정확한 근거를 대보라고 정부에 말하고 싶다”는 후배의 호소는 이치에 맞는다.

예상치 못하거나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 일어나면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하는 말보다는 점검을 먼저 하는 게 순리다. 경주 강진은 한국 사회에 뿌리 내린 ‘원전 안전신화’에 경종을 울리고 ‘지진 안전지역’이라는 신화마저 무너뜨렸다. 그럼에도 정부 당국자와 원전 안전신화론자들은 신화 타령만 하고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교훈조차 배우지 못했다는 인상을 풍긴다. 원전에 대한 불안감은 정부와 운영기관에 대한 불신이 1차 원인이다. 한수원은 과거 시험성적서 위조와 가짜부품 납품, 대규모 금품로비 등 비리에 사장에서 말단직원에 이르기까지 연루된 적이 있다. 오래전부터 논란이 된 활성단층 문제에 대해서도 “사회적 파장을 고려할 때 좀 더 신중한 연구가 필요하다”거나 활성화되지 않았다며 뒷짐만 지고 있다. 그 사이에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승인이 났다. 위험을 부추기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안전신화에 도취돼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더 심각하다. 그동안의 연구자료를 공개하거나,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조사를 하는 게 당국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일이 터지면 부인하고, 실패로부터 배우려 하지도 않고, 자신의 무능을 드러내지 않으며 똑같은 표정과 논리의 반복으로 잊혀지기만 기다리는 게 반지성주의자들의 특징이다. 이런 위정자들이 똬리를 틀고 있는 한 ‘악마의 증명’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일본 영화감독 소다 가즈히로는 ‘체험적 반지성주의론’이라는 글에서 본인이 자각하지도 의식하지도 못하거나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반지성주의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또 선입견과 예정조화를 멀리할 것, 자신을 포함한 세계를 잘 보고 거기에 귀를 기울일 것, 일단 목적과 도달점은 잊어버리고 눈앞의 현실을 허심탄회하게 관찰할 것을 해독제로 제시했다. 경청하길 바랄 따름이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