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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73]임금 착취 굴레의 갇힌 삶(2017.01.10ㅣ주간경향 1209호)

확실하지는 않지만 1988~89년 무렵 병장 월급은 1만원이 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고맙게도 내가 복무하던 부대는 쥐꼬리만한 월급을 자대 배치 이후 전역 때까지 통장에 차곡차곡 쌓아줬다. 특수부대여서 위험수당이 월급만큼 더해졌다. 27개월 뒤 1989년 봄 제대할 때 30만원가량의 목돈이 든 통장을 받고 기분 좋았던 기억이 새롭다. 28년이 지난 2017년 병장 월급은 스무 배 이상 오른 21만6000원이란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어떤 이는 ‘20만원 고지 돌파’에 의미를 두지만 최저임금으로 환산하면 여전히 쥐꼬리 수준이다. 2017년 최저임금은 월급 기준으로 135만2230원이다. 병장 월급은 최저임금의 약 16% 수준에 불과하다.

새삼스럽게 병장 월급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번호 표지이야기 때문이다. 애국 착취, 노인 착취, 셀프 착취 등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을 다뤘다. 착취. 자본가나 지주가 노동자에 대해 그 노동에 비해 싼 보수를 주고 그 이익의 대부분을 독점하는 것을 말한다. 옛 군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 애국 착취라는 말은 익숙하지 않은 표현이다. 과연 군 시절 나는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가. 아니다. 애국 착취라는 군대의 저임금 문제는 깨닫지조차 못했다. 물론 당시도 착취라는 단어가 만연했다. 다만 ‘열정페이’라는 고상한 말로 포장하지 않았을 뿐이지만.

우리의 일생은 애국 착취-알바 착취-셀프 착취-노인 착취라는 임금 착취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학 진학이 시작이다. 대부분이 등록금 융자라는 문턱에 갇힌다. 천주희는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사이행성·2016)에서 ‘학생부채’가 생기는 이유를 이렇게 썼다. “대학만이 살 길이라고 가르치는 학교, 부모, 주변 사람들. 대학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라고는 대학밖에 모르는 이 사회가 청년들을 빈곤으로 몰아넣고 채무자로 만들고 있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입대나 알바를 하는 수밖에 없다. 휴학해 알바를 하더라도 최저임금 수준밖에 받지 못한다. 열정페이를 강요당한다. 오죽하면 정부가 2017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주요 프랜차이즈나 편의점, 요식업에서의 최저임금 준수 감독을 강화할 것이라는 내용을 포함시켰을까. 취업을 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등록금 융자를 갚아야 한다. 그러고 나면 고용불안이 기다린다. 끝 모를 경기불황과 기업 구조조정, 임금피크제. 가장으로서 어깨가 가장 무거울 때 직장을 잃으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자영업이다. 제살 깎아 먹는 셀프 착취의 시작이다. 국민연금을 받기까지나 그 이후에는 노인 착취의 희생양이 된다. 여성은 더한 불이익을 받는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15년에 여성은 남성에 비해 35.4%나 임금을 덜 받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꼴찌다.

‘착취 공화국’이라는 우리의 진단에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가 임금 착취의 대상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더 이상 이들에게 임금 착취를 감내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우리 앞의 미래는 암울하다. 장기불황의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인공지능(AI)에 노동력을 빼앗기리라는 전망에 의기소침해진다. 국가와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어쩌면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일은 과거 무상보육처럼 극심한 논란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그것을 풀어나가는 것이 정치가 할 일이다. 망설이면 사회는 붕괴된다. 국가 대개조라는 촛불민심의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대선의 해인 2017년이 그 논의의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24&artid=201701031659001#csidxcd2ffef9d1b4cad96012c0a9bc20c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