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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70]병신역적(丙申逆賊) (2016.12.20ㅣ주간경향 1206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은 사필귀정이다. 제정신을 가진 국회의원이라면 당연한 선택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56명은 반대표를 던졌다. 최경환 의원은 참석하고도 표결하지 않았다. 이 56명의 새누리당 의원들을 ‘병신역적(丙申逆賊)’이라 부르는 것은 지나친 처사일까. 111년 전 대한제국이 주권을 빼앗긴 을사늑약 강제 체결 때 찬성한 5인의 매국노에게 을사오적(乙巳五賊)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역사에 남겨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비선실세 최순실과 함께 국사를 말아먹은 박 대통령을 옹호한 새누리당 의원들은 을사오적 취급 받는 게 못마땅할지도 모르겠다. 이들에게 묻고 싶다. “이게 국회의원인가”라는 원성이 들리지 않는가. 병신역적의 수장은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다. 이들을 비롯해 56명의 새누리당 의원들은 비록 이름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을사오적 이완용,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 이근택처럼 대대손손 역사의 죄인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병신역적들은 을사오적과 달리 국가를 위한 불가피한 행동이라고 항변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을사오적은 황실의 안녕과 자신들의 권익보장을 이유로 찬성했다. 나라가 망해도 손해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떻든 을사오적과 마찬가지로 56인은 용서받을 수 없다. 마지막 기회마저 차버렸다. 새누리당 탄핵 반대 의원들은 민주주의의 적이자 공화국의 적이다. 헌재의 결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내용은 헌법위반만 13개나 된다고 한다. 국정의 열쇠를 범죄인에게 맡긴 거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국가를 들먹이며 옹호한 것은 알량한 기득권을 지키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역사가 병신역적을 용서하지 않을 가장 큰 이유는 거대한 촛불민심을 거역했다는 데 있다. 국민 95%가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다. 81%는 탄핵을 원했다. 촛불민심이 박근혜를 부정했던 것은 그가 대통령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서다. 대통령 스스로 공적 영역을 없애버리고 사적인 영역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진실을 별 볼 일 없는 하찮은 문제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 결과 진실은 멀어지고 본질과 관계없는 일들이 지배적 담론으로 자리 잡게 된다.(김민웅, <인간을 위한 정치>, 2016, 한길사) 그럼에도 병신역적들은 촛불민심을 우롱하고 조롱하고 모독했다. ‘박근혜 순장조’를 자처했다는 사실 자체가 반국민적 처사다. 둘째, 이들은 시대정신을 읽지 못했다. 촛불민심이 바라는 것은 박근혜의 퇴진만이 아니다. 박정희-박근혜 부녀로 이어져 온 낡은 체제의 청산이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은 비선실세와 그 부역자들에 의한 국정농단을 청산하는 주춧돌을 놓은 것이다. 박 대통령의 말을 빌리면 ‘비정상의 정상화’의 첫 단추를 꿰는 일이다.

탄핵 가결은 국민들이 이룬 승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승리의 축배에 도취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우리 앞에는 구시대의 악습을 청산하고 새시대의 정초를 놓으라는 시대적 과제가 놓여 있다. 지금까지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미래의 청사진을 보여주지 못했다. 과거에 갇힌 정치인들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 미래가 밝은 것만도 아니다. 조기대선과 정계개편 등 향후 정치일정을 두고 정치적 이해득실과 유불리를 따지는 꼼수와 정치공학적 계산이 난무할 것이다. 특히 탄핵 상황에 이르게 한 혼란을 야기한 새누리당 병신역적은 책임을 지기는커녕 다시 국민을 배반할 수 있다. 값진 투쟁 끝에 이뤄낸 미래는 우리 스스로가 건설해야 한다. 촛불민심은 그 가능성과 길을 제시했다. 촛불의 성과를 도둑맞을 수는 없다. 촛불을 멈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24&art_id=201612131648211#csidxb128f19ed6044f4ba8eac9b9c5b0c5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