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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74]노란 종이비행기(2017.01.17ㅣ주간경향 1210호)

책꽂이 한쪽 구석에 노란 종이비행기가 놓여 있다. 겉에는 ‘잊지 않기 위해’라고 쓰여 있다. 종이비행기는 왜 거기 있을까. 종이비행기를 펼쳐본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2년 전 약속 오늘 다시 되새겨봅니다. 그리고 그 약속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2주기인 오늘 다짐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하겠습니다. 별이 된 모두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날의 추억이 회한으로 되살아난다.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뒤늦게 달려갔던 팽목항. 거기에서 아이들에게 보내려고 버스 안에서 꾹 눌러 쓴 편지. 세찬 비바람 탓에 날리지 못하고 품속에 간직한 채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종이비행기. 날릴 수만 있었다면 중력, 추력, 항력, 양력의 원리를 넘어 무한비행으로 천국으로 보낼 수 있었다고 믿었는데….

많은 이들이 말했다. 그날 이후 시간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또 한국 사회가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세월호 이후 1000일이 됐다. 그리스신화에는 2개의 시간 개념이 나온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크로노스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의미 있는 자신만의 시간을 의미한다. 1000일은 누구에게는 크로노스의 시간이었을 터이고, 누구에게는 카이로스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세월호 이후 의미 있는 삶을 산 이들에게 1000일은 지옥과 같은 시간만은 아니었다. 잊지 않고 행동하겠다는 다짐의 시간이었다. 연대와 공감의 시간이었으며, 희망과 변화의 시간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느끼기 위해 안산으로, 팽목항으로, 동거차도로 달려갔다. 그 순례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딛고 당당하게 살겠다는 몸부림이자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것은 100만 촛불에 하나라도 더 보태고자 토요일마다 광장으로 달려가는 이들의 심정과 같다. 내가 없으면 어떡하나. 나마저 외면하면 어떡하나. 이는 연대와 공감의 발로이자 핵심이다.

여전히 세월호 이전의 시간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세월호의 교훈을 한 귀로 흘리려는 이들이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는 망발을 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대표적이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요.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는데….” 직무정지된 대통령의 이 망발은 더 이상 할 말을 잃게 한다. 이 말에 세월호를 바라보는 그의 인식 수준이 그대로 담겨 있다. 대통령에게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우연히 일어난 교통사고일 뿐이다. 그리고 교통사고의 책임이 왜 대통령에게 있느냐는 것으로 이어진다. 세월호 침몰 원인은 배의 결함과 선원들의 미숙함에 있고, 침몰 책임 역시 해운사와 선원에게만 물을 수 있다는 정부와 새누리당의 인식과 똑 닮았다. 무사유와 책임 회피의 전형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한국이 눈먼 자들, 즉 비선실세와 그 공모자들의 국가임을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이다. 이들의 국정농단 실태는 국정조사 청문회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특검 조사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예의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으로 드러난 진실마저 감추려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세상은 변하고 있다. 정의를 향한 목소리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죽은 넋들은 촛불로 되살아났다. 촛불민심에 귀 막으려 하는 자들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들뿐이다. 1000만개의 촛불이 모여 어두운 바닷속을 환하게 비출 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날 세월호의 진실은 비로소 인양될 것이다. 올봄 세월호 참사 3주기에 팽목항으로 다시 가리라. 가슴속에 품어온 노란 종이비행기를 날리기 위해. 내 노란 종이비행기가 1000만개의 염원과 함께 그들에게 전해지길 간절히 바라면서.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24&artid=201701101544251#csidxcfd860f2cb8a436a85b63cd9901e74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