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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76]채널 9번만 보는 ‘혼족’들(2017.02.07ㅣ주간경향 1212호)

최근 방영된 <무한도전>을 보다 몇 차례 빵 터졌다. 이번 미션은 ‘국민MC’ 유재석이 자신을 모르는 사람을 찾는 거였다. 유재석은 ‘1일 게스트’ 김종민과 함께 강원도 정선군의 오지마을을 찾는다. 노인들만 사는 곳이라는 이유에서다. 마을회관에서 KBS 1TV 교양프로만 보는 91세 할머니가 모를 것이라는 결정적 제보를 듣는다. 유재석은 할머니와의 첫 대면에서 미션에는 성공하지만 ‘굴욕’을 당한다. “혹시 저를 보신 적이 있으세요?” “모르겠는데….” 하루 종일 TV를 보고 모든 프로그램을 다 좋아한다면서도 자신을 모른다는 말에 충격 받은 유재석은 TV 케이블채널을 돌린다. 설상가상. 그날따라 자신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없다. 그때 할머니로부터 나온 말에 빵 터졌다. “TV에 본래 안 나오는구먼, 뭘.” 이 다음이 압권이다. 가기 전에 사진 하나 달라는 할머니 말에 사진이 없는 유재석이 말한다. “전화기 있으세요?” 할머니는 집 전화기를 가리킨다. 다시 빵 터질 수밖에. 할머니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이다.

근데, 한바탕 웃음을 자아낸 이 에피소드 뒤에 놀라운 사실들이 숨어 있다. 첫째, 아무리 스마트폰 시대라지만 고령층은 여전히 TV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의 재확인이다. 전성기 때 TV는 진실의 유일한 창구였다. “TV에서 봤다”는 말은 진실을 보증하는 언표였다. “TV에 안 나오는구먼, 뭘”이라는 할머니의 말이 그것을 보여준다. TV에서 못 봤으니 아무리 국민MC라도 모르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20일 발표한 방송프로그램 시청 행태는 TV의 힘이 여전함을 보여준다. 예상대로 TV 대신 스마트기기로 보는 비율은 20대가 20.9%로 가장 많았다. 60대와 70대 이상은 6.1%와 3.7%에 그쳤다. 하지만 방송프로그램을 볼 때 스마트기기보다 TV를 선호한다는 응답은 20대(49.5%)나 60대(69.6%), 70대 이상(69.0%)에서 큰 차이 없이 높았다.

또 하나는 TV를 보는 고령층이 ‘채널 9번’, 즉 KBS 1TV를 선호한다는 점이다. 채널 9번은 전통적으로 고령층의 전유물이었다. 이들의 TV 보는 행태는 대충 이렇다. <6시 내 고향>에서 시작해 일일 드라마를 본 뒤 <9시 뉴스>에서 끝난다. 재미있는 것은 케이블채널을 보다가도 뉴스 시간만 되면 <9시 뉴스>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제때 뉴스 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말은 이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특히 이들에게 뉴스는 바로 KBS <9시 뉴스>다. 방송사 뉴스 가운데 시청률이 가장 높은 이유다. 채널 9번 뉴스를 본다는 사실은 왜곡된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과거 ‘땡전뉴스’의 폐해를 생각하면 된다. 시절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KBS 1TV는 공영방송의 대명사인 영국의 BBC와 같은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대선을 앞둔 현실에서 편파보도 등 불공정 논란을 초래할 수 있다.

TV로 정보를 접하는 고령층은 정보 소외계층이다. 경제적으로는 빈곤층이다. 인구학적으로는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1인 가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정치적으로는 보수 성향을 띤다. 반면 이들 반대편에 있는 젊은층은 디지털마인드로 무장해 있다. 이들의 1인 가구 비중도 커지고 있지만 ‘즐긴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다르다. 이질적인 두 집단에도 공통점이 있다. 정치적 소외계층이자 관심층이라는 점이다. 정책은 여전히 괴리감이 있지만 대선의 해인 올해 이들의 존재감은 주목받을 것이다. 이번 설 합본호 표지이야기로 ‘1인 가구’ 문제를 짚은 이유이기도 하다. 대선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어떨까. 앞으로 정치권은 이들을 정책적으로 어떻게 수용할까. 정치권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24&art_id=201701241922181#csidx38f0a30cd878a1890a16a31c748aff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