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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78]56세 퇴임 대통령 오바마의 행보(2017.02.21ㅣ주간경향 1214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좌충우돌 행보에 세계가 휘청일 때 카리브해 푸른 바다로부터 신선한 사진이 날아왔다. 어린아이마냥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영국 기업가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과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었다. 보름여 전 헬리콥터를 타고 백악관을 떠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사라진 오바마가 사실상 퇴임 후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시기심과 질투심의 발로인가. 즐거운 표정의 오바마 모습을 보자 몇 가지 궁금증이 일었다. 오바마는 왜 억만장자 브랜슨의 초청에 응했을까. 오바마는 자신의 사진이 공개되는 것을 원했을까. 원했다면 그 의도가 무엇일까. 그리고 사진 공개로 더 큰 이득을 보는 쪽은 오바마일까, 브랜슨일까.

첫 번째는 자연스런 궁금증의 소산일 뿐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조금 다르다. 오바마 사진은 파파라치에 의해 찍힌 것이 아니다. 브랜슨이 고용한 전문 사진가가 찍었다. 브랜슨이 버진그룹 웹사이트와 자신의 트위터 계정 등 SNS에 오바마의 사진을 공개한 것은 그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진 공개 이후 오바마 측의 이의제기도 없다. 그렇다면 오바마는 사진 공개로 무엇을 기대했을까. 어쩌면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 이렇게 지내고 있어” 하고 그저 근황을 알려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말하자면 퇴임 전 “잠이나 자고 빈둥거리겠다”고 한 약속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궁금증에 대한 답은 아무래도 브랜슨일 것 같다. 브랜슨이 오바마 사진 공개로 천문학적인 홍보효과를 얻었다는 보도로 확인된다. 브랜슨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홍보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지금 트럼프의 미국이 엉망인데 기업가와 철없이 장난치며 놀고 있을 때인가라는 비아냥과 위선자라는 비난도 나온다. 반면 퇴임 대통령으로서 충분이 누릴 권리가 있으며, 이런 일로 왜 시비냐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위에 언급한 궁금증들은 호사가들의 취향에 기대 흉내내본 것이다. 진짜 관심은 퇴임 대통령으로서의 오바마의 향후 행보에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둘째 딸 사샤가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워싱턴에 머무를 예정이며, 책도 쓰고 오바마 재단 일을 할 것이라는 정도다. 중요한 것은 세계의 대통령으로 8년간 호령했지만 오바마의 나이는 56세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여느 퇴임 대통령보다 주목받는 인물이 될 요소가 많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는 타고난 달변가이자 웅변가요, 재담꾼이자 익살꾼이다. 전직 대통령 프리미엄이 엄청날 것이라는 말이다. 마음만 먹으면 퇴임 후 강연으로 돈을 쓸어모은 빌 클린턴 부부를 넘어설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오바마에게는 그를 돋보이게 할 상대가 있다. 트럼프다. 트럼프가 갈지자 행보를 거듭할수록 오바마의 진가는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워싱턴 정가 자기권 안에 있으면서 반트럼프 또는 세계 진보진영의 선봉장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인생 2막에 접어든 오바마가 그 기대에 부응할지가 어쩌면 지켜볼 유일한 관심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퇴임 대통령의 역할은 정해진 것이 없다. 대개는 여생을 국가를 위해 봉사할 것이라고 밝힌다. 실천한 이는 지미 카터 정도가 아닐까 싶다. 머잖아 박근혜 정권이 남긴 적폐를 청산하고 민주주의 토대를 다질 새 대통령을 뽑게 된다. 대통령을 뽑기도 전에 퇴임 대통령을 거론하는 것은 두 사람이 한몸이기 때문이다. 현직에서 잘한 대통령이 아무래도 훌륭한 퇴임 대통령이 되기 쉽지 않겠는가. 퇴임 대통령의 좋지 않은 말로를 본 우리 앞에는 말썽을 일으키지 않을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당면과제가 놓여 있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24&artid=201702141716401#csidxe7736d09baa39f0a69f13af3c7fd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