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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80]멈출 수 없는 최순실 재산 추적(2017.03.07ㅣ주간경향 1216호)

얼마 전 한 월간지가 유력 대선후보를 표지사진으로 내세우고 집권 플랜 기사를 다룬 적이 있다. 그런데 사달이 났다. 잡지가 나온 지 얼마 안 돼 그 후보가 대선 출마를 없었던 일로 해버린 것이다.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한 잡지사의 당혹감은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언론은 시간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그 후보에 대한 출마 포기 압력이 있었고, 사퇴할 수 있다는 예측이 있긴 했지만 실제로 그럴 건지는 당사자만이 아는 일이었다. 구더기가 무섭다고 장을 담그지 않을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내가 그런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은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의 활동시한 만료(2월 28일) 나흘 전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 총리는 특검 연장 여부에 대한 확답을 하지 않고 있다. 이번호 ‘표지이야기’로 특검 기사를 다뤘다. 특검이 최순실씨의 재산 규모를 파헤치기에는 시간이 짧았고, 특검이 종료되더라도 최씨 재산 추적 노력은 중단돼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특검이 연장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한편으로는 관련 기사가 온라인에 우선 노출되는 토요일부터 특검 종료일 이전에 ‘황 총리의 중대발표’가 나오면 좋겠다는 기대와 함께.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최씨의 재산 추적에 관한 한 특검의 성과는 미미했다. <경향신문>은 특검이 최씨가 차명 등의 방식으로 은닉한 재산 규모가 최소 1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잠정 결론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8000억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언론 보도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물론 특검의 공식 발표가 아니다. 당초 최씨 은닉 재산 규모에 대한 언론 보도가 부풀려졌을 수도 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차명으로 이뤄진 최씨 재산을 추적하는 일은 관련 기관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특검은 이 문제에 부딪혔다. 당연히 재산 추적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특검이 하지 못하는 일을 언론이 하는 일은 힘에 벅차고 위험이 따른다. 본지는 최씨의 독일 재산을 파악하는 기사를 다뤘다가 언론중재위에 제소돼 정정보도를 했고,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처지에 빠져 있다. 영광도 없는 상처투성이뿐이지만 언론의 숙명이다.

박영수 특검팀의 성과는 폄하하거나 비난할 일이 아니다. 지난해 박영수 특검열차는 국민의 성원을 안고 출발했다. 두 달여 만에 이렇게 된 이유는 특검열차를 세우려고 하는 집요한 방해공작 탓이다. 그 훼방꾼들은 누구인가. 특검 연장 결정권을 쥐고 있는 황 총리를 포함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동조자 또는 방조자 역할을 한 장관 및 공직자들,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반대한 새누리당 의원들, 태극기를 농락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박 대통령의 명명백백한 잘못을 좌우 진영 간 대결구도로 만드는 데 혈안이었고,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은 탄핵소추돼 직무정지됐지만 그의 정부는 여전히 살아있고, 새누리당은 쪼개졌지만 수구꼴통세력은 여전히 결속하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 이들이 무한반복하고 싶어하는 레퍼토리가 전국 광장에서 울려퍼지고 있다. “박근혜는 아무 잘못이 없다, 최순실을 잘못 둔 죄밖에 없다, 태블릿PC는 조작된 것이다, 촛불시민은 빨갱이다….”

특검열차를 계속 달리게 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우리의 바람은 특검열차는 멈추더라도 최씨 재산 추적은 중단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검에 대한 시각차는 존재하지만 최씨 재산 환수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황 총리가 특검 연장을 반대한다면 역사의 심판이 그를 기다릴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요기 베라의 말을 다시 새긴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24&artid=201702281430391#csidx40011a74f3a4454bad5a238bfd0c0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