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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81]반지성주의자들의 초상(2017.03.14ㅣ주간경향 1217호)

탄핵 반대 태극기 집회에 나온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왜 나왔느냐”는 한 어르신의 질문에 말똥말똥 묵묵부답이다.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계속되는 어르신의 채근에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린 채 사라진다. 인터넷과 SNS에 떠도는 동영상은 이런 그에게 ‘어벙 김문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을 맡고 있는 그는 탄핵 기각을 당론으로 채택하자는 의견까지 냈다.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는 발언으로 악명을 날린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도 태극기 집회의 단골손님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변호인으로 활동한 김평우·서석구 변호사는 주말이면 태극기를 온몸에 두른 시위꾼으로 변신해 탄핵 기각을 외친다. 김 변호사는 신문에 태극기 집회를 선동하는 광고까지 냈다. 이들은 탄핵정국이 탄생시킨 대표적인 유명인사들이다. 이들뿐이랴! 태극기 집회 참가자 중에는 얼굴 드러냄이 두려워 군중 속에 숨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반면 황교안 국무총리나 홍준표 경남지사처럼 집회장 밖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이들도 있다.

‘어벙 동영상’은 정치인 김문수를 깎아내리기 위한 의도가 강하다. 하지만 끝없이 추락하는 그의 모습에서 많은 이들은 더 이상 어떠한 연민마저도 느낄 수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모습은 반지성주의자의 전형일 뿐이다. 지성주의자는 적어도 자기가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받아들여 수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반지성주의자는 잘못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탄핵정국에서 반지성주의자들의 전략은 피해자 코스프레 강조와 원한 부추김이다. 주지하듯 탄핵 반대세력은 대부분 국정농단 세력과 한통속이다. 당연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 반성할 리 없다. 이들은 박 대통령을 피해자라고 선동하는 일이 가해자에서 벗어나는 가장 손쉬운 전략임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또한 니체가 말한 르상티망, 즉 강자에 대한 약자들의 원한을 들쑤셔 동조자들을 부추긴다. 쉽게 말하면 자신의 모든 고통은 탄핵세력에게서 비롯됐다고 모든 책임을 그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이들의 동조세력은 박 대통령의 몰락과 함께 기득권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다.

반지성주의자들의 행태는 정치인이냐 아니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정치인은 철저한 정치적 잇속 끝에 움직인다. 자유한국당의 잠재 대선후보인 김 전 지사의 집회 참석, 법과 제도 개선 및 예산심의에 영향력을 미치는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진태 의원의 사사건건 몽니 부리기, 대중을 선동하는 홍준표 경남지사의 자극적인 발언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 탄핵정국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기회일 뿐이다. 옳고 그름 자체는 안중에도 없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을 뿐이다. 위선자나 기회주의자라는 말조차 사양하지 않는다. 반면 김평우·서석구 변호사의 행태는 다르다.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 수구세력의 지속을 위해 똘똘 뭉친 신념주의자들이라 할 수 있다. 탄핵심판정에 태극기를 지참하고 신문에 광고까지 내는 행동은 개인적인 신념 외에 다른 계산이 개입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들이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순교자는 결코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은 무오류에 빠진 최고 엘리트들의 일그러진 얼굴뿐이다.

지난해 12월 9일 본격적으로 시작된 탄핵정국의 1막은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정국이 혼란할수록 반지성주의자들의 준동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으로 나눠진 국론분열의 전선은 두렵기까지 하다. 안타까운 점은 그 골을 메울 지성의 부재다. 지성의 회복이야말로 절체절명의 과제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24&artid=201703071149501#csidx9823e5b137e0e4b9d41b4aeee8f1d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