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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13]괴물은 되지 말자(2015.10.20ㅣ주간경향 1147호) 아이들에게 세상은 괴물 천지다. 부모는 물론이고 주변 환경 모두가 괴물이다. 2012년 작고한 미국의 유명한 그림책 작가 모리스 센닥의 대표작 에는 그런 두려움에 가득찬 아이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어느 날 엄마한테 야단 맞은 맥스는 벌로 저녁을 굶은 채 잠이 든다. 꿈속에서 그는 오히려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가서 괴물들과 함께 논다. 맥스가 꿈속에서 괴물을 상상하는 것은 현실에서 느끼는 고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자란 뒤 그들이 겪은 고통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까. ‘일 못하는 사람들 유니온’ 회원 오수경은 이번 호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란에 기고한 글(47쪽)에서 영화 를 본 소감을 전하면서 비슷한 질문을 하고 답한다. “사도세자처럼 미치광이가 되거나 견고한.. 더보기
[편집실에서12]“너 없어도 회사는 잘 굴러가”(2015.10.13ㅣ주간경향 1146호) 휴가 갈 때 동료들이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너 없어도 회사는 잘 굴러가.” 회삿일일랑 걱정 말라며 건네는 인삿말이다. 이 말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닌 현실이 될 수가 있다. 누구든 저성과자로 몰려 퇴출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바로 정부가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노동개혁이다. 내용 하나하나가 노동조건을 악화시켜 서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것투성이다. 개혁이 아닌 개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일반해고 요건이 완화되면 ‘정당한 사유 없이 해고할 수 없다’는 최소한의 보호장치가 무너진다. 최대 피해자는 노조 없는 사업장의 노동자들이다. 현재 노조 조직률은 10% 선. 전체 노동자 100명 중 90명이 쉬운 해고의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숫자가 1.. 더보기
[편집실에서11]우리의 코빈은 어디 있나(2015.10.06ㅣ주간경향 1145호) 나토 및 유럽연합 탈퇴, 해외파병 중단, 오사마 빈라덴을 암살한 미국 비난, 일방적 핵무기 폐기, 이라크전에 개입한 토니 블레어 전 총리 전범 기소…. 대외정책뿐 아니다. 국내 개혁에도 목소리를 높인다. 부자 세금 인상, 기업에 대한 세금 우대조치 중단, 사회 인프라와 재생에너지를 위한 양적완화 실시, 건강보험 민영화조치 중단, 왕정 폐지, 에너지·철도·우편 국유화, 대학 등록금 무료화, 여성 장관 절반 기용…. 이 같은 급진좌파 성향의 정책을 주장한 이는 지난 12일 압도적 지지로 영국 야당인 노동당 대표가 된 제러미 코빈(66)이다. 우리에겐 금지된 언어를 말하는 코빈도, 이를 받아들이는 풍토도 부럽다. 기존 엘리트 지도부 일부가 자진사퇴하고, “차기 총선에서 전멸할 것”(블레어 전 총리)이라느니 “.. 더보기
[편집실에서10]아무도 집을 떠나지 않는다(2015.09.22ㅣ주간경향 1144호) ‘아무도 집을 떠나지 않는다/ 집이 상어의 아가리가 되지 않는 한/ ……/ 아무도 자식들을 보트에 태우지 않는다/ 바다가 육지보다 더 안전하지 않는 한/ ……/ 아무도 난민 캠프나 알몸 수색을 선택하지 않는다/ 당신의 몸이 아픈 채로 버려지는/ ……/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집은 상어의 아가리이고 총구다/ 그리고 아무도 집을 떠나지 않는다/ 집이 당신을 뒤쫓지 않는 한/ 집이 다리를 재빨리 움직이라고 말하지 않는 한/ …….’ 케냐 태생의 소말리아계 영국 여성시인 와르산 쉬레(27)의 ‘아무도 집을 떠나지 않는다(No One Leaves Home)’이다. 두 장의 사진이 이 시를 떠올리게 했다. 터키 해변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세 살배기 소년 아일란과 독일 뮌헨역에 도착해 환히 웃으며 .. 더보기
[편집실에서9]훔쳐보기 유혹(2015.09.15ㅣ주간경향 1143호)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목적으로 원형감옥을 고안했다. ‘파놉티콘(panopticon)’이다. ‘모두(pan)’와 ‘본다(opticon)’는 그리스어를 합성한 것이다. 벤담이 그린 것은 원형감옥 중앙에 감시탑이 있고, 감시자는 그 탑 안에서 전체 죄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구조다. 감시자가 있는 탑 안은 어둡고, 죄수들이 갇혀 있는 방은 환하게 돼 있어 죄수들은 보이지 않는 감시자의 시선을 느낄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낳기 위한 이 같은 구조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명제를 낳은 벤담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벤담의 계획은 당시 실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감시 개념은 건축을 넘어 철학적 고찰 대상으로 확장됐다. 영국 소설.. 더보기
[편집실에서8]‘난워킹 리치’와 ‘난, 워킹 리치!’(2015.09.08ㅣ주간경향 1142호) “‘워킹 푸어(Working Poor)와 난워킹 리치(Non-working Rich)가 함께 증가하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이는 일하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미국의 가치를 훼손해 결국은 미국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1990년대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에서 노동장관을 지낸 버클리대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지난 3월 말 허핑턴포스트에 기고한 ‘워킹 푸어와 난워킹 리치의 증가’라는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10대 부자 가운데 6명은 자산을 물려받은 상속자라고 주장하면서 월마트 가문의 재산이 미국 하위 40%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많다는 사례를 들었다. 그리고 2007년부터 2061년까지 상속될 자산규모는 59경 달러라는 보스턴대 연구자료를 인용했다. 당연히 반발이 나왔다... 더보기
[편집실에서7]벌레사회와 족제비의 지혜(2015.09.01ㅣ주간경향 1141호) ‘큰 구렁이가 창고 옆 족제비 구멍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족제비 새끼를 삼키고 배가 불룩해져 뜰로 기어 나온다. 암컷 족제비와 수컷 족제비가 깜짝 놀라 순식간에 구렁이 앞에 오더니 번갈아가며 땅을 파는데, 그 구덩이는 깊숙하고 길쭉하니 대나무 홈통 같다.그런 다음 구덩이의 양 끝을 제 몸길이에 맞춰 수직으로 파내려가더니, 암컷과 수컷이 그 속에 숨는다. 구렁이가 구불구불 기어서 족제비가 파놓은 구멍으로 들어간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틈이 없어 딱 들어맞는다. 얼마 뒤, 구렁이는 움직일 수도 없고 배를 뒤집을 수도 없어 드디어 죽고 만다. 아마도 두 마리의 족제비가 몰래 깨문 것 같다. 마침내 족제비가 구멍에서 나와 구렁이의 배를 가른다. 족제비 새끼 네 마리가 죽어 있는 듯하나 몸은 온전하다. 새끼들을 .. 더보기
[편집실에서6]롯데 드라마와 극장정치(2015.08.18ㅣ주간경향 1139호) 지금 한낮의 무더위와 열대야를 식힐 블록버스터 영화가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해 롯데시네마에서 상영하고 있는 다. 황제경영을 해 와 ‘神격호’로 불린 창업주 아버지가 늙고 정신이 혼미한 틈을 타 두 아들이 벌이는 경영권 쟁탈전을 담고 있다. ‘보통 사람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재벌의 삶과 인식’ ‘재벌가의 복잡한 혼맥’ ‘재벌가와 정치권의 결탁’ 등 흥행 요소는 모두 갖춰져 있다. 여기에다 빠져서는 안 되는 막장 드라마는 물론 한국인을 자극시키는 반일감정 요소도 있어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흥행 성적은 가히 돌풍이라 할 만하다. 상영 일주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할 기세를 보이고 있다. 언론은 이 영화의 흥행 소식을 매일 주요 뉴스로 다룰 정도다. 여야와 정부 할 것 없이 정치권도.. 더보기
[편집실에서5]국정원의 국민 길들이기(2015.08.11ㅣ주간경향 1138호) “길들인다는 게 뭐지?” 생텍쥐페리의 동화 에서 길을 떠난 어린왕자가 도중에 만난 여우에게 묻는다. 여우가 답한다. “그건 사람들 사이에서는 잊혀진 것들인데…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야.” 학창 시절 를 읽으면서 ‘관계’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길들이다’라는 단어를 떠올린 까닭은 국가정보원의 해킹 의혹 사건 때문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의 민간인 사찰 의혹 사건의 진실과 실체가 밝혀질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가져올 결과다. 바로 국정원의 ‘국민 길들이기’ 효과다. 국가 정보기관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정보를 독점한다. 국민들도 어느 정도 이를 용인한다. 하지만 결과는 대부분 파국으로 끝났다. .. 더보기
[편집실에서4]언제나 네 곁에 있을게(2015.08.04ㅣ주간경향 1137호) 2년 전 가을, 주일 미군기지 탐방차 오키나와 섬을 찾았을 때 제주 강정마을이 문득 떠올랐다. 기지 이전 논란의 중심에 있는 후텐마 미군기지를 둘러본 뒤 나오다 한쪽 입구에서 기지 이전운동을 벌이던 주민 6명을 봤을 때였다. 버스로 이동하며 잠깐 스쳐지나듯 본 장면이었지만 잊혀지질 않았다. 비록 소수였지만 뉴스로만 보던 현장을 직접 봤다는 감회와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 반대시위가 겹쳐졌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오키나와 현정부는 지금 섬 북쪽에 후텐마 기지를 옮기려는 공사의 허가를 취소하려 하고 있다. 지난해 말 후텐마 기지를 현 바깥으로 이전할 것을 공약한 오나가 타케시(翁長雄志)가 현지사에 당선되면서 벌이진 일이다. 어쩌면 아베 내각과의 정면대결이 불가피할지도 모르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