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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마감후

마감후18/펜타곤 페이퍼와 위키리크스

1971년 6월13일 미국을 뒤흔든 문건이 뉴욕타임스를 통해 공개됐다. ‘펜타곤 페이퍼’다. 당시 국방부 정보분석가였던 대니얼 엘스버그가 공개한 45~64년 미국의 베트남에 대한 정책 결정과정을 담은 1급 기밀 7000쪽은 역사를 바꿨다. 미 국방부가 64년 베트남전 확전을 위해 통킹만 사건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고, 반전운동으로 번지면서 미국에 패배를 안겼다. 그로부터 정확히 40년 뒤인 지난 13일, 페이퍼 전문이 일반에 공개됐다. 중요한 내용이 이미 공개됐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식은 잠시 잊고 있던 이름들을 떠올렸다. 위키리크스와 그 설립자인 줄리언 어산지, 정보제공자로 지목받고 있는 브래들리 매닝 일병이다. 


지난해 위키리크스가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 일지와 미 국무부 외교전문 등을 공개한 행위는 엘스버그의 펜타곤 페이퍼 폭로에 비견됐다. 펜타곤 페이퍼가 있었기에 위키리크스가 가능했고, 엘스버그가 있었기에 매닝이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펜타곤 페이퍼와 위키리크스의 정보의 질이나 엘스버그와 매닝의 공개 이유는 달랐지만 이후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유사하다. 펜타곤 페이퍼 공개로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은 뉴욕타임스와 이를 보도한 기자를 간첩죄로 기소하기 위해 연방대배심을 소집했다. 엘스버그는 총 12개 혐의로 115년형에 처할 위기에 빠졌다. 미 행정부는 이들을 기소하기 위해 보스턴 지역의 유명 지식인들을 대배심 앞에 세웠다. 뉴욕타임스 기자이자 역사가인 데이비드 할버스탬, 세계적 언어학자이자 반전운동가인 노엄 촘스키, 반전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하워드 진 등이 법정에 섰다. 이들은 침묵으로 맞섰다. 미 헌법에 의거해 ‘시민 불복종’ 정신을 실천한 것이다. 닉슨은 뉴욕타임스와 엘스버그를 기소했지만 연방대법원은 공공기관에 대한 언론보도의 자유를 보장하는 기념비적인 판결을 통해 엘스버그의 손을 들어줬다.


호주의 시드니평화재단으로부터 평화상 금메달을 수상한 위키리크스의 줄리언
어산지 | 경향신문 DB | 로이터연합뉴스
40년이 지난 지금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어산지를 같은 혐의로 법정에 세우기 위해 연방대배심을 소집했다. 닉슨 행정부가 하지 않았던 언론인에 대한 기소를 오바마가 하려 한다는 비난이 일었다. 실제로 지난 15일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서 연방대배심이 열렸다. 대배심이 열렸다고 해서 어산지가 곧바로 기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산지를 기소하기 위한 미 행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됐다. 대배심 앞에 선 매닝의 친구는 40년 전 보스턴의 지식인들이 그랬듯이 침묵을 지켰다. 어산지는 40년 전 엘스버그, 뉴욕타임스와 같은 결과를 맞을 수 있을까. 펜타곤 페이퍼 사례가 주는 교훈은 국가기밀보다 국민의 알권리가 중요하다는 점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40년이 지났지만 역사는 거꾸로 가고 있다. 내부고발자를 법으로 재단하려는 방침은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9·11 테러 이후 미 행정부는 애국법이라는 이름으로 내부고발자에 의한 기밀누출을 철저히 막았다. 지난달 27일 0시를 기해 만료될 운명에 처해진 애국법은 유럽 방문 중이던 오바마가 전날 서명함으로써 4년간 연장됐다. 엘스버그는 “내부고발자(보호)에 대한 개선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국민의 알권리가 있는 정보를 누설한 공무원에 대한 탄압은 전례가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난 13일 가디언에 기고한 ‘왜 펜타곤 페이퍼가 지금 중요한가’라는 글에서 “내가 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며 내부고발을 촉구했다. 기밀자료를 너무 늦게 공개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엘스버그는 “정보공개로 인해 개인이 감수할 위험은 엄청나지만 전쟁에 따른 인명 희생은 막을 수 있다”고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