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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파키스탄 정보부(ISI), 테러리스트의 적인가 동지인가

ㆍ빈 라덴 살해 이후 미국과 갈등의 핵으로 떠오른 ISI

파키스탄 정보당국은 2003년과 2004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쪽으로 50여㎞ 떨어진 아보타바드에서 알카에다 연락책으로 의심받는 사람을 추적했다. 그가 수개월 전 체포된 9·11테러 주모자인 칼레드 셰이크 모하메드의 후임인 아부 파라즈 알 리비의 소재를 알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정보부(ISI) 요원들은 아보타바드의 주택 한 곳을 습격했지만 알 리비를 잡는 데 실패했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파키스탄 대통령은 2006년 발간한 회고록 <사선에서>에 그 연락책은 알 리비가 아보타바드에 있는 3곳의 집에서 지냈다고 밝혔다고 썼다. 파키스탄 정보당국 관계자는 3곳의 집 가운데 한 곳이 지난달 2일 미군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키스탄 외교부는 빈 라덴 사망 이후 이 같은 사례를 파키스탄이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지난달 5일 전했다. 하지만 로이터는 이런 주장이 그럴 듯해 보이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미 국방부가 위성사진을 판독한 결과 빈 라덴이 은신처로 사용한 집은 2004년에는 없었으며, 당시 파키스탄의 급습작전도 없었기 때문이다.

빈 라덴 살해사건 이후 고조되고 있는 미국과 파키스탄 간 갈등의 중심에는 파키스탄 정보기관 ISI이 있다.

            
 
미국은 빈 라덴 제거작전을 펼치면서 정보가 새나갈까봐 파키스탄에 알리지 않았으며, 파키스탄은 이를 비난했다. 갈등은 미 중앙정보국(CIA)이 파키스탄 내에서 수행하고 있는 무인비행기 공격을 둘러싼 논란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의 최대 동맹국인 파키스탄에 대한 미국의 불신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파키스탄 ISI는 9·11 테러 이후 탈레반과 알카에다 비호조직으로 비난받아왔다. 이뿐만 아니라 2008년 11월 인도 뭄바이 테러, 2005년 7월 영국 런던 지하철 테러 등의 배후로 지목돼왔다. ISI를 CIA의 파트너로 여겨온 미국도 ISI와 알카에다 및 탈레반의 유착을 의심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마이크 멀런 미 합참의장은 지난 4월 파키스탄을 방문해 ISI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에 테러를 감행해온 탈레반 일파인 하카니 그룹과의 연계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아슈파크 파르베즈 카야니 파키스탄 육군참모총장은 “미국에 의한 부정적인 선전”이라고 맞받아쳤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2009년 5월 CBS 시사대담프로 <60분>에 출연해 ISI의 ‘이중플레이’ 가능성을 언급했다. 미국은 또 ISI가 이란과 리비아, 북한에 핵기술을 비밀리에 제공한 의혹을 받고 있는 ‘파키스탄 핵의 아버지’ 압둘 카디르 칸 박사를 비호해온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지난 4월 말엔 미국이 ISI를 하마스나 헤즈볼라와 같은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국무부 외교문서가 공개되기도 했다.

    

“파키스탄 국민은 진실을 알고 싶다” 파키스탄 여성 활동가들이 지난달 13일 아메드 슈자 파샤 파키스탄 정보부장과 아슈파크 파르베즈 카야니 육군참모총장이 수도 이슬라마바드 의회에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 사살작전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는 동안 ‘파키스탄 국민은 진실을 알 필요가 있다’ 등의 내용을 쓴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슬라마바드 | AFP연합뉴스



그렇다면 ISI는 테러리즘의 비호세력인가. ISI가 9·11 테러 이전까지 아프간 탈레반을 지지해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파키스탄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을 인정한 세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ISI가 아프간에 개입하게 된 계기는 1979년 옛 소련의 아프간 침공사건이다.

ISI는 CIA와 함께 소련 적군에 대항해 싸운 무자헤딘 전사들을 훈련시키고 무기와 정보, 자금을 제공했다. 89년 소련 철군 이후엔 소련이 세운 괴뢰정권에 대항한 무자헤딘을 지원하고, 그후 설립된 탈레반 정권을 지지했다. 미국의 아프간 침공으로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뒤에도 서방은 ISI에 대한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ISI가 무장세력을 훈련시켜 아프간으로 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도 파키스탄의 중서부 도시 퀘타가 탈레반의 본거지라고 주장했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당시 대통령은 이를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비난했지만 전문가들은 과거보다는 줄었지만 탈레반에 대한 ISI의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를 비롯한 많은 정부 인사들은 ISI를 ‘국가 속의 국가’로 불렀다. 정부의 통제 밖에서 일하고 독자적인 대외업무를 수행하고 있어서다. ISI가 독립된 권력집단이긴 하지만 파키스탄 정부와 군부의 묵인이 없다면 불가능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정서다.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하산 압바스에 따르면 ISI는 헌법적으로는 총리 소속이지만 요원 대부분은 군 소속이다. ISI는 무샤라프 군사정권 시절 무소불위의 권력이었다.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의 문민정부 이후 권한이 약화될 것으로 전망됐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자르다리 대통령은 2008년 7월 ISI를 내무부 소속으로 바꾸려 했으나 몇 시간 만에 취소했다. 카야니 육군참모총장과의 파워게임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미 브루킹스연구소의 남아시아 전문가 브루스 리델 연구원은 파키스탄 민간정부는 군과 ISI에 대한 통제권을 사실상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카야니 총장의 후임으로 ISI 부장이 된 아메드 슈자 파샤 중장은 카야니의 심복이다.

166명 희생된 뭄바이 테러 인도 경제 중심지 뭄바이의 명소인 타지마할 호텔이 2008년 11월27일 테러범의 공격을 받아 화염에 휩싸여 있다. 뭄바이 | AP연합뉴스


ISI가 탈레반과의 관계를 끊지 못하고 있는 것은 ‘숙적’ 인도와의 관계를 고려해서다. 카슈미르 분쟁에서 이슬람 무장세력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파키스탄 정부는 인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과 사이가 좋은 않은 상태다. AP통신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ISI가 미군 철군 이후를 대비해 아프간 탈레반 등과의 관계를 유지하길 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ISI가 ‘불량조직’이라는 시각이 만만찮지만 테러조직을 비호해온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ISI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서 많은 알카에다 조직원을 체포했다. 여기에는 9·11 테러의 주모자로 알려진 모하메드 같은 거물도 포함돼 있다. 모하메드는 2003년 라왈핀디에서 체포돼 현재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돼 있다. 파키스탄은 또 9·11 테러 직후엔 아프간 국경 부근 와지리스탄주에 군병력 8000명을 배치했고, 대테러전의 와중에 수백명이 희생되기도 했다. 하지만 파키스탄 내에서 탈레반 활동이 여전히 활발하다는 점 때문에 파키스탄군과 ISI는 이들의 활동을 비호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ISI와 CIA의 향후 관계에 대한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리언 파네타 CIA 국장의 후임자로 내정된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은 카야니 참모총장, 파샤 ISI 부장과 관계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리델 연구원은 로이터에 이 같은 상호불신 탓에 “매우 긴장되고 힘든 관계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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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바이 테러 배후로 재판 중
 


ISI 연루 의호가 사건은?-인도와 영토분쟁 카슈미르선 ISI가 무장단체 지원 의혹도

파키스탄 정보부(ISI)가 연루 의혹을 받는 대표적인 사건은 2008년 11월 발생한 인도 뭄바이 테러다. 뭄바이 중심부 호텔과 기차역 등을 대상으로 한 폭탄테러로 166명이 숨지고 300여명이 다쳤다. 인도 외무부는 ISI를 테러 배후로 지목했다. 공격을 감행한 무장단체 ‘라시카르 에 타이바’와 연계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라시카르 에 타이바는 인도-파키스탄 간 영토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카슈미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이슬람 무장단체다. 파키스탄은 이 주장을 부인했지만 이듬해 2월 테러공격이 파키스탄에서 계획됐다는 점은 인정했다. ISI는 카슈미르 지역의 이슬람 무장단체를 암암리에 지원해왔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아메드 슈자 파샤 ISI 부장을 비롯한 간부들은 이 사건으로 미국인 희생자들로부터 기소됐다.

지난해 미국에서 체포된 라시카르 에 타이바 요원인 파키스탄계 미국인 데이비드 헤들리는 뭄바이 테러 계획에 ISI가 관여했으며, 자신에게 2만5000달러를 줬다고 진술했다. 이 사실은 최근 인도 정부 보고서를 통해 밝혀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파키스탄 정부는 이 사건과 관련해 미국에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혔고, 파키스탄 언론이 이슬라마바드 주재 미 CIA 국장의 이름을 공개해 그가 미국으로 귀국하면서 양국 간 외교적 갈등을 빚었다.
인도 정부는 또 사망자 209명, 부상자 700여명이 발생한 2006월 7월 뭄바이 통근열차 테러사건에 대해 ISI가 계획했다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인도-파키스탄 간 오랜 갈등관계 탓에 과장된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정부는 56명이 사망하고 약 700명이 부상한 2005년 7월7일 영국 런던 지하철역 테러사건의 배후로 ISI를 지목했다. 영국에서 성장한 자생적 테러범 4명 가운데 3명이 파키스탄계라는 이유에서다.

파키스탄 언론인 납치·사망사건의 배후에도 ISI가 등장한다. 지난달 31일 파키스탄 저명 언론인 시에드 살림 샤자드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실종 이틀 만이었다. 아시아타임스온라인 및 이탈리아 AKI통신 파키스탄 지국장인 샤자드는 지난달 22일 알카에다의 카라치 해군기지 공격과 관련해 해군 내부 인사와의 공모 가능성을 제기해왔다. 휴먼라이츠워치의 알리 아얀 하산은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인터넷판에 “살해수법으로 봐 파키스탄 ISI가 관련된 사건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