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기자를 찾는 전화가 왔다. 점잖은 목소리의 남성은 북유럽 극우정당의 뿌리를 다룬 기사(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012110355&code=970205)를 보고 궁금한 점이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다문화주의’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기사 내용과 관련한 내용이 아니어서 답변드릴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다음 번에는 한국의 다문화주의 실태를 다뤄달라”고 부탁했다. 엉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궁금해하며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는 순간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산에 가면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인을 폭행하고, 심지어 여자를 성폭행하는 일이 다반사인데….”
그 며칠 전인 7월26일엔 e메일을 몇 통 받았다. 세계를 뒤흔든 7·22 노르웨이 테러사건 용의자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에 관한 기사가 발단이었다. 브레이비크가 만나고 싶어 하는 인물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이 포함됐다는 내용(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7261613131&code=970205)이었다. 메일을 보낸 한 분은 “이런 메일을 처음 보낸다”면서 “그렇게 대통령께 막말을 하고 싶으면 제발 우리나라를 떠나주세요”라고 적었다. 신문보다 먼저 실린 온라인에서의 반응은 뜨거웠다. 댓글만 250여개가 달렸다.
기자생활 20년 동안 이런 일은 많지 않았다. 기사에 대한 반응은 고마웠지만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았다. 7·22 테러는 우리 안에 감춰진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 계기가 됐다. 많은 사람이 속내를 털어놨다. 테러의 배경이 된 이민자 및 다문화주의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증오 전화와 댓글, 메일이 넘쳐나는 현상은 어떻게 봐야 할까.
노르웨이 사건 이후 국내 언론이 재조명한 우리 사회의 반외국인 정서는 우려할 만했다. 국내 거주 외국인은 전체인구의 2.6%, 임금노동자의 4%를 차지한다. 다문화가정도 16만2000가구에 이른다. 그러나 일부 동남아 출신 이주민들은 벌레 취급을 당하고 있다. 파키스탄인들이 그렇다. 그들은 ‘파퀴벌레’로 불린다. 파키스탄과 바퀴벌레의 합성어다. 이보다 인종차별적이고 왜곡된 편견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을까. 다문화주의에 대한 반발, 다름을 수용하지 않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노르웨이도 예외는 아니다. 이민자 인구가 10%를 넘어서면서 다문화주의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다. 제2당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극우정당 노르웨이 진보당 지지자가 약 23%에 달하는 현실이 이를 대변한다. 제2의 브레이비크 출현이 우려되는 현실이다.
하지만 노르웨이 국민의 대응은 놀랄 정도로 차분하다. “열린 사회와 관용을 포기하지 않겠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마녀사냥을 해서는 안된다”(총리), “브레이비크의 형량을 높이는 결정은 패닉 상태에서 해서는 안되고 토론을 거쳐야 한다”(법무장관). 아무리 정치인의 정치적 수사라 할지라도 이쯤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만약 한국에서 이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노르웨이 사건이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제 관용의 시대는 끝났다는 경종인가. 배타적 민족주의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인가. 우리 안의 브레이비크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한국은 노르웨이와 달라 애초부터 관용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일까. 일자리를 빼앗는 파퀴벌레들더러 돌아가라고 하고 싶은가. 아닐 것이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 주변엔 베트남인 며느리들이 넘쳐난다. 동남아 이주노동자들은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도맡아 해주는 이들이다. 우리는 언젠가 베트남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이의 삼촌이나 고모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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