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경복궁 옆에 있는 한 카페에 들렀다. 지인들과 저녁을 먹은 뒤였다. 유명한 커피콩 생산국의 원두로 만든 커피와 다른 음료를 파는 가게였다. 가장 싼 커피 가격이 6000원. 평소 커피전문점을 자주 가지 않고, 가더라도 1500~2000원짜리 아메리카노만 고집해온 나로서는 놀랐지만 다른 길이 없었다. 체면도 있었고, 한 번쯤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된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최저임금보다도 비싼 커피를 마시는 죄책감도 동시에 일었다. 그 탓인가. 아무리 늦은 밤에 커피를 마셔도 잘 자던 평소와 달리 그날 밤은 전전반측하며 거의 밤을 새웠다. 많은 상념이 오갔다. 커피값보다도 못한 인간이라니,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의 가치는 무엇인가…. 만약 커피값이 비싼 이유가 알바생 시급 인상을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마실 용의가 있다는 생각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전날 편집회의에서 이번호 표지이야기를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계기로 생활임금제에 관해 다루기로 한 뒤끝이어서 마음이 더 착잡했던 것 같다.
생활임금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주기 위해 최저임금보다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복지제도의 하나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올해 5580원보다 8.1% 오른 6030원. 노동계는 적다고, 경영계는 많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누리꾼은 예의 날카로운 풍자로 거들었다. “최저시급 6030으로는 아직 프라푸치노님에게 말을 놓을 수 없다구!!”(트위터리안 Wool)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의 사람 값이 드디어 카라멜 마끼아또를 넘어서서 카라멜 마끼아또에게 마음껏 반말할 수 있다는 소식. 그러나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가격 상승 또한 예상되므로, 잠깐의 야자타임이 될지도. 아 그리고 몇몇 프라푸치노님들은 아직 넘사벽”(트위터리안 욱스)
고급커피값보다도 못한 게 우리의 최저임금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행된 지 2년 만에 생활임금제를 도입한 지방자치단체가 늘고 있다는 소식은 ‘가뭄에 단비’ 같다. 조례를 제정한 지자체가 28개이며, 올해 말까지 20개 지자체가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공공부문에서 이 제도의 혜택을 누리는 이는 5342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받은 시급은 평균 6629원으로, 올해 최저임금보다 1049원이 많다. 과거 최저임금조차도 받지 못하던 수혜자들은 아이들과 영화도 보고 축구장도 갈 수 있을 정도의 문화생활을 즐길 여유가 생겼다. 자신들보다 못한 처지의 동료들로부터는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1000원이 가져다준 행복’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여전히 인간다운 최저생활을 할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수혜자들의 바람은 한결같다. “다른 곳으로도 확산되면 좋겠다.” 재산이나 소득의 유무, 노동 여부나 의사와 관계없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최소생활비를 지급하는 기본소득제 도입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들의 소박한 꿈이 이뤄지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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