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가을, 주일 미군기지 탐방차 오키나와 섬을 찾았을 때 제주 강정마을이 문득 떠올랐다. 기지 이전 논란의 중심에 있는 후텐마 미군기지를 둘러본 뒤 나오다 한쪽 입구에서 기지 이전운동을 벌이던 주민 6명을 봤을 때였다. 버스로 이동하며 잠깐 스쳐지나듯 본 장면이었지만 잊혀지질 않았다. 비록 소수였지만 뉴스로만 보던 현장을 직접 봤다는 감회와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 반대시위가 겹쳐졌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오키나와 현정부는 지금 섬 북쪽에 후텐마 기지를 옮기려는 공사의 허가를 취소하려 하고 있다. 지난해 말 후텐마 기지를 현 바깥으로 이전할 것을 공약한 오나가 타케시(翁長雄志)가 현지사에 당선되면서 벌이진 일이다. 어쩌면 아베 내각과의 정면대결이 불가피할지도 모르고, 미·일동맹에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후텐마 기지에서 본 6명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그들 뒤에는 오키나와 주민들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강정은 어떤가. 강정 해군기지는 건설을 지지하는 지사가 당선되면서 추진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마을 주민들은 2007년 국방부의 해군기지 건설계획 확정에 반발해 이를 결사 반대하며 맞섰다. 이때부터 시작된 강정마을 주민들의 반대투쟁이 8월 3일이면 3000일째를 맞는다. 만 8년이 넘는 기간이다. 해군기지는 올해 준공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군사기지가 없던 ‘평화의 섬’ 제주에 군사기지가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해군기지의 공식 명칭은 ‘제주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다. 해군 제주민군복합항 건설사업단 홈페이지에는 “미래 대양해군의 핵심전력인 제7기동전단의 모항 기능을 수행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크루즈 선박을 포함해 관광자원화와 인구유입 및 부대 운영에 따른 경제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구절도 있다. 강정은 실패일까.
강정마을은 제주 올레길 가운데 경관이 뛰어난 7구간에 있다. 휴가철을 맞아 제주를 찾는 많은 여행객들이 재잘대며 이 7구간을 걸을 것이다. 만약 강정마을을 지나간다면 잠시 발길을 멈춰 보자. 그리고 그곳에 나부끼고 있는 깃발과 입간판의 글귀들을 읽어보고 한 번쯤 그 의미를 되새겨 보자. 그곳에는 주민들의 투쟁, 정부의 거짓말과 사기, 폭력, 그리고 한국 정치의 실패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또한 그곳에는 꺼져가는 진실을 향한 몸짓과 끈질긴 생명의 힘이 살아 있다. 그곳은 대한민국의 현주소이자 미래가 잉태되는 곳이다.
이번호 표지이야기에서는 ‘강정의 3000일 투쟁’을 되짚어봤다. 그동안 숱한 좌절과 고통 속에서도 강정을 지키려 한 모든 분들께 바치는 것이지만, 결코 위로가 될 수 없음을 안다. 참여연대 제주도대책위가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 3000일을 맞아 낸 신문광고 제작 참가자 모집광고의 응원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약속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언제나 네 곁에 있을게.”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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