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장면을 떠올려보자. 첫 번째, “타이어를 껴입고 배를 깔고 바닥을 기며 구걸하는 걸인이 비가 오자 벌떡 일어나 멀쩡하게 걸어”가는 장면이다. 두 번째는 “머리가 땅에 닿도록 굽신대며 표를 구걸하고, 신분을 위장한 채 머슴입네 간을 빼줄 듯이 가난한 자의 발바닥이 되겠다던 정치인들”이 “숙였던 고개와 바닥에 깔았던 신분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 거만한 지배자가 되는” 장면이다. 어떤 느낌이 드는가. 두 장면은 시인 백무산의 시 ‘호모에렉투스’에 나온다. 시인은 걸인과 정치인을 “생존을 위해 직립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시인은 걸인과 정치인 행태에서 배신감이나 혐오를 떠올린다. 그러나 걸인의 동냥 쇼와 정치인의 계급위장 쇼는 다르다고 본다. 시인의 대담한 시구 안에 답이 있다. “배를 깔고 바닥을 기다 멀쩡하게 일어나는 기적과 숙였던 고개와 바닥에 깔았던 신분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 거만한 지배자가 되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도덕적인 기적인가.”
이 시가 떠오른 것은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 직후의 논란들 때문이다.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법 적용 대상에서 국회의원이 제외된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언론인이 공직자가 아닌데도 왜 포함되느냐는 것이다. 국회의원 제외 논란은 큰 반발을 불렀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는 공무원, 교직원, 언론인 등 400만명가량이라고 한다. 전체 국민의 10% 안쪽이다. 대상자의 영향력으로 본다면 1%에 속한다. 300명의 국회의원은 인구 대비로는 0.001% 이하다. 가히 ‘최상위 금수저’라 할 만하다. 더욱이 이들은 당초 부정청탁 금지와 함께 김영란법 초안의 양대 축이던 이해충돌 방지를 삭제한 장본인이 아니던가. 이런 비난을 예상했는지 새누리당 의원 22명은 헌재 결정 3주 전에 국회의원 예외규정을 없애야 한다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정당한 입법활동 이외의 부분에 대해 국회의원 등도 이 법의 적용대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도 국회의원이 포함된다고 명시한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국회의원 면죄부 논란이 일자 국회 정무위는 하루 뒤 국회의원도 포함된다는 보도자료를 내는 해프닝을 벌였다. 논란을 일으킨 이유는 법에 국회의원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를 명시적으로 허용한다’는 규정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마디로 오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새누리당 의원 22명의 김영란법 개정안 발의와 안 전 대표 및 노 대표의 말은 무엇인가. 무지를 드러냈거나 은연중에 예외라고 생각했다는 방증 아닌가.
언론인 포함 논란은 언론인을 제외해야 한다는 논리를 함축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는 헌재 결정 직후 낸 성명에서 ‘취재활동 제약 및 비판 언론에 대한 재갈 물리기 우려’로 에둘러 표현했다. 성명의 옳고 그름을 떠나 ‘염치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억울해하거나 분노할 수도 있겠지만 농·축산·어민들만 할까. 기실 떳떳하다면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 않다면 언론이 흔히 쓰는 ‘물타기’와 뭐가 다른가.
지금 언론인은 언론 통제수단 활용을 걱정하기에 앞서 왜 이런 상황이 왔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초안에서 삭제된 이해충돌방지법을 되살리는 데 힘을 모아야 할 터이다. 그렇지 않다면 백무산 시 속의 걸인이나 정치인의 행태와 뭐가 다를까. 염치없는 호모에렉투스는 되지 말자.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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