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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55]에어컨 전기요금 폭탄의 ‘폭탄해법’(2016.08.23ㅣ주간경향 1190호)

7월 마지막 주말, 어머님 생신을 맞아 지방 소도시에 사시는 부모님 댁을 찾았다. 뜨거운 오후 햇볕을 가르고 차를 몰아 어스름할 무렵에 도착했다. 현관 앞에 서니 ‘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에어컨 소리였다. 문을 열자 안에서 미리 온 동생들이 한마디한다. “빨리 들어와. 냉기 식겠다.” 너댓 평 되는 거실은 작은 벽걸이 에어컨 덕에 선선해 살맛이 났다. 언제 설치해 드렸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아마도 10년은 됐지 싶다. 그동안 몇 번이나 가동하셨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 처음 틀었다.” 그럼 그렇지. 해마다 이맘때 드는 어머님 생신을 맞은 자식과 손주들의 연례행사나 손님 방문 때 외에는 일절 가동하지 않으실 테니. 앞으로 자주 트시라고 했지만 그러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안다. 평생 근검절약이 몸에 밴 분들이다.

지난 주말 아내가 말했다. “에어컨 좀 틀자.” 샤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렇게 더워?”라고 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아내는 하소연했다. “낮에 에어컨을 틀고 싶어도 혼자라서 아까워 못 튼다. 같이 있을 때 좀 틀자.” 가슴이 아렸다. 직장인들이야 폭염 때 ‘회사가 최고의 피서지’이지만 전업주부는 그렇지 않았다. 부모님과 비슷한 시기에 산 에어컨은 우리 가족에게도 신주단지나 다름없다. 1년에 트는 날이 며칠이나 될까. 그 비싼 것을 무더위 때 틀려고 산 것 아닌가 하고 호기를 부려보지만 마음먹는 대로 되지 않은 게 일반인들의 삶이다. ‘에어컨 전기요금 폭탄’이라는 말이 그냥 나왔겠는가. 지레 걱정이 앞서는 건 당연하다. 문득 전기요금이 궁금했다. 명세서를 보니 6월분이 4만3530원이었다. 사용량은 296㎾.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37㎾ 많았다. 6단계 누진요금제로 보면 3구간(201~300㎾) 끝이자 4구간(301~400㎾) 진입 바로 직전이었다. 4구간에 들어가면 1㎾당 요금(280.6원)이 3구간(187.9원) 때보다 92.7원 오른다. 에어컨 사용에 따른 전력량이 얼마인지 모르나 전력을 50㎾ 더 사용한다면 1만4000원 정도 추가된다.

사적인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푼 것은 내 경우가 보편적이지 않을까 하는 판단에서다. 사람마다 삶의 우선순위가 다르고 모두 합리적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집에서 에어컨을 틀고 비빔국수를 만들어 먹을 것인가, 아니면 시원한 식당에서 맛있는 것을 사먹겠는가. 3인가족이 밥을 먹으려면 최소 2만원은 나온다. 반면 에어컨으로 50㎾를 한꺼번에 쓴다면(시간이 얼마는 걸릴지는 모르지만) 1만4000원 정도 든다. 집에서 에어컨을 틀고 비빔국수를 만들어 먹는 것이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항상 같은 선택을 하지 않고 망설인다.

정부는 서민들이 이리저리 머리 굴리며 해온 고민거리를 한 방에 해결했다. ‘올 7~9월에 누진제 구간 폭을 50㎾씩 높여 부담을 줄여주겠다.’ 에어컨 전기요금 폭탄 괴담을 ‘폭탄해법’으로 푼 것이다. 이 소식은 서민들에게 한여름의 한 줄기 소나기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보면 달아나던 더위가 다시 들러붙은 격이다. 대통령의 ‘시혜 정치’의 재연 때문이다. 산자부는 감사원의 누진제 적용 개선 지적을 3년이나 뭉기고, 이틀 전만 해도 “에어컨을 4시간만 쓰면 요금폭탄이 없다”고 항변해 왔다. 더욱이 가정을 전력대란의 주범으로 낙인찍었다. 그런데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해결되다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주변에는 에어컨 전기요금 폭탄 논란이 딴 나라 일인 사람들이 많다. 대통령과 정부는 시혜성 폭탄해법이 오히려 서민들의 분통을 터뜨리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