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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54]대통령 딸의 식당 알바(2016.08.16ㅣ주간경향 1189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둘째 딸 사샤(15)가 휴양지 식당에서 알바를 했다는 뉴스를 보고 놀랐다. 충격은 아니었지만 신선했고, 부러웠고, 착잡했다. 보도를 보면 사샤는 가족이 해마다 여름휴가를 보내는 휴양지의 한 식당에서 지난 2일(현지시간)부터 하루 4시간가량 초보 알바 일을 했다. 손님 맞기, 서빙, 그릇 치우기 등이다. 식당 주인은 오바마 부부와 친구다. 오바마 가족이 6일부터 이곳에서 2주간 여름휴가를 보내니 알바 기간은 길어야 닷새다. 사샤의 알바 소식은 미국에서도 화제다. 뉴스 사이트마다 다양한 댓글들이 달렸다. 고작 며칠이냐는 실망감을 표시하거나, 하는 김에 일주일은 더 하라는 글도 있다. 아버지 ‘빽’ 덕분이라고 비꼬거나 세상 일이 다 그런 것 아니냐는 글도 있다. 고작 4시간 알바를 위해 경호원을 6명이나 붙이는 세금낭비라는 비판도 있다. 그곳의 시간당 최저임금이 12~15달러라고 하니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굳이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평소 오바마 부부의 양육관이나 교육관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

오바마 부부는 그동안 두 딸을 ‘평범한 10대’로 키울 것이라고 입만 열면 말했다. 말처럼 쉽지 않지만 부부는 실천했다. 15년 삶 가운데 딱 절반을 백악관에서 지낸 사샤는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는 아니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다. 지난 6월 고교를 졸업한 세 살 많은 말리아는 내년 9월 하버드대에 진학한다. 1년 공백기를 둔 것은 ‘갭이어’로 보내기 위해서다. 갭이어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자원봉사나 인턴십, 교육, 여행 등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기간이다. 두 딸의 평범한 삶을 가능하게 한 오바마 부부의 배짱이 신선하고 부럽다. 특히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깨는 일을 몸소 실천해오고, 퍼스트레이디가 된 뒤 이를 위해 더욱 더 헌신해온 미셸이 그렇다.

사샤의 알바 소식에 오바마 부부니까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라면 과연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비로소 나, 우리의 문제임을 실감했다. 사샤의 알바는 쉽게 말하면 아버지가 식당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부탁해 이뤄졌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오바마는 딸에게 사회경험을 시켜줄 기회를 얻었고, 친구는 손님을 끌 기회를 얻었으니 말이다. 당사자인 사샤도 식당 알바일이 쉽지 않았겠지만 그 나이에 이보다 좋은 인생 경험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5살이면 우리로 치면 중3으로, 한창 공부할 때다. 생존을 위한 경우라면 모를까 중3 딸이 방학 때 패스트푸드점 알바를 한다고 하면 선뜻 받아줄 부모는 많지 않을 터이다. 결코 공부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에서 10대 여자애가 알바를 한다는 것은 착취와 성추행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경호원의 보호를 받는 사샤의 경우야 예외이지만 미국이라고 해서 우리와 같은 문제가 왜 없겠는가. 그럼에도 사샤의 알바가 의미 있는 것은 오바마 부부의 남다른 신념과 실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노동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여성차별이 사회문제임을 가르쳐준 것이다. 사샤의 알바가 대통령 딸의 알바라는 일회성 화제나 부러움의 대상으로만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다. 10대 딸을 둔 부모로서 공부 못지않게 노동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다. 나는 딸에게 “방학 때 알바 한 번 해볼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성 대통령이 있음에도 아직은 아닌 것 같아 착잡하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