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로 만신창이가 됐다. 박 대통령이 한 말로 표현하자면 ‘혼이 비정상’인 대통령이자 ‘참 나쁜 대통령’이다. 자신의 정치생명은 물론 그가 이끄는 정부는 ‘식물정부’가 됐다. 정부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그를 지지하지 않은 이들이나 지지한 51.6%나 황당하기는 매한가지다. 선무당의 말에 놀아난 대통령을 보니 “이게 나라냐”는 탄식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잠 못 이루는 국민들의 입에서는 ‘탄핵’과 ‘하야’라는 말이 애완견 부르듯 튀어나온다. 분노의 수위는 임계점을 넘었다.
우리가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은 단순하다. 국태민안이다. 대통령이 천재일 필요가 없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은 ‘머리’와 ‘손’과 ‘발’을 빌려 썼다. 전두환과 김영삼은 노골적으로 그랬다. 하지만 자신의 영혼을 내주는 대통령은 없었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관계는 악마와 거래를 한 파우스트 박사와 메피스토펠레스를 연상시킨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우울과 환멸에 빠진 파우스트에게 나타나 쾌락적인 삶을 선사하는 조건으로 영혼을 넘겨받는다. 도대체 박 대통령은 무엇 때문에 최태민과 최순실 부녀에게 영혼을 팔아먹었을까. 어쩌다 박 대통령은 최씨 부녀에게 휘둘리게 됐을까. 이 질문들을 풀어야만 지금의 난국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박 대통령과 최태민 부녀의 특별한 관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대표적인 게 1970년대 중앙정보부가 작성했다는 ‘최태민 보고서’다. 박근혜를 등에 업은 최태민의 전횡과 비리가 끊이질 않자 박정희가 중정을 시켜 만들었다는 문서다. 박정희를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재판 때 밝힌 일화도 회자된다. 박정희가 김재규와 최태민, 박근혜 등을 불러놓고 직접 신문했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는 울면서 “그런 일 없다”고 부인했고, 최태민은 “고문당해 허위자백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동생들이 박근혜를 최태민에게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자필 탄원서를 보냈다고 한다.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 이명박 캠프에서는 “박 후보가 당선되면 최태민의 딸 최순실과 남편 정윤회가 국정농단의 대를 잇게 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당시 이 후보 캠프에서 박 후보 검증을 담당했던 정두언 전 의원은 10월 2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내가 (과거에) 모든 사람이 경악할 것이고, 박근혜 대통령 좋아하는 사람들 밥도 못 먹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는 2007년 8월 MBC라디오에 출연해 이 같은 발언을 한 바 있다.
이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운명의 여신은 박 대통령 편이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운은 사실상 끝났다. 그가 의지해온 최씨 부녀가 그의 정치생명을 끊었다. 이제 박 대통령은 최씨 일가와의 관계를 밝혀야 한다. 결자해지이자 마지막 의무다. 박 대통령과 최씨 부녀의 비정상 관계가 밝혀진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을 꼭두각시로 만든 이들이 최씨 부녀만일까. 정작 무서운 것은 대통령을 꼭두각시처럼 뒤에서 조종한 세력들이 더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박 대통령은 물러나지만 그들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실체가 드러날수록 정치에 대한 환멸은 커지고, 환멸이 정치적 무관심을 낳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이것이 그들이 바라는 바일지도 모른다. 더 투명하고 신뢰받는 정치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최순실 게이트의 교훈이다. 이를 배우지 않는다면 한국 정치는 퇴보만 있을 뿐이다. 이제 비정상의 정치의 굿판을 걷어치우자.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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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24&art_id=201611011827401#csidx4114e87423e7b60b0687f4ee276cd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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