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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63]환관 조고와 ‘비선실세’ 최순실(2016.11.01ㅣ주간경향 1199호)

 

BC 210년,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은 순행지에서 갑자기 죽는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환관 조고는 꾀를 부린다. 진시황의 유지를 숨긴 채 태자 부소 대신 후궁 소생의 어린 호해를 후계자로 세운다. 승상이 된 조고는 스스로 황제가 되고 싶어한다. 모반을 앞둔 그는 신하들을 시험한다. 그는 사슴을 끌고 와 호해 앞에 바치며 말한다. “말입니다.” 호해는 웃으며 말한다. “승상이 틀리지 않았소? 사슴을 말이라 하니 말이오.” 호해가 신하들에게 묻는다. 대답은 갈린다. 목숨을 걸고 직언한 신하들은 죽임을 당했다. 사마천의 <사기> ‘진시황본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자성어의 유래다. 거짓된 행동으로 윗사람을 농락해 자신이 권력을 휘두른다는 뜻이다.



‘최순실 게이트’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지록위마’ 고사를 떠올린다. 지금까지 드러난 의혹만 보더라도 최씨의 행태는 현 정권의 ‘비선실세’라는 수식어가 허언이 아님을 보여준다. 최씨는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개입, 딸의 이화여대 특혜입학, 교수 교체 개입을 비롯한 숱한 의혹을 받고 있다. 최씨가 대통령의 연설문까지 고친다는 말마저 나오는 마당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승마선수인 최씨 딸의 앞날을 막은 사람들은 제거됐다. ‘대한민국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정윤회가 2위, 박근혜 대통령이 3위’라는 말(박관천 전 경정)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한 셈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지록위마 정국’은 2014년에도 있었다.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이다. 당시 조응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현 민주당 의원)과 박관천 경정은 기소돼 옷을 벗었다. 이를 보도한 언론사는 치도곤을 당했다. 그해 교수들은 지록위마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했다. 지금과 그때가 다른 점은 정윤회 대신 그의 전처 최순실씨와 딸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명백히 다른 점은 진짜 말이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최순실씨는 현대판 환관이나 다름없다. 대통령을 지척에서 보좌하는 비서실장이나 국무총리, 민정수석, 새누리당의 친박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21세기 한국판 환관들이 설칠 수 있는 환경은 두 가지다. 이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거나 박 대통령이 이들을 방관하는 경우다. 어느 경우든 박 대통령이 현재의 혼란을 자초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최순실 게이트’의 끝은 어디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박 대통령만이 알 것이다. 의혹 제기 한 달 만에 나온 박 대통령의 언급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게 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 이름조차 거명하지 않았다. 또 이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배후가 청와대임을 시사해도 청와대는 부인한다. 어쩌면 청와대는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해 결국 최순실씨 개인 비리로 몰아갈지도 모른다. 이른바 ‘꼬리 자르기’다. 하지만 꼬리가 몸통을 흔들든 몸통으로 꼬리를 감추려 하든, 대통령과 최순실씨는 한 몸통이오, ‘최순실 게이트’는 권력형 비리다. 박 대통령이 위기를 모면하는 길은 하나뿐이다. 국정을 농단하는 최순실씨의 의혹을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다. 대통령 주위의 환관들도 혼란한 정국을 바로잡고 스스로 명예를 회복하려면 직위를 건 직언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자의 말로가 어떤지는 이미 역사가 보여줬다.

조고는 결국 호해를 살해하고 부소의 아들 자영을 삼세 황제로 옹립하지만 자영에게 죽임을 당한다. 진시황의 죽음을 이용해 호가호위한 지 3년 만의 일이다. 그가 죽은 지 2년 뒤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진나라도 건국 15년 만에 멸망한다. 박 대통령의 시간도 5년 가운데 3년 8개월이 지났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24&art_id=201610261007411#csidx77cc2afab95d784acb439de54a1cd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