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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71]파사현정(破邪顯正) (2016.12.27ㅣ주간경향 1207호)

“진실을 안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오랫동안 주입되고 키워지고 굳어진 신념체계와 가치관이 자신의 내부에서 무너져가는 괴로움의 고백이다. 절대적인 것, 신성불가침의 것으로 믿고 있던 그 많은 우상의 알맹이를 알게 된 사람들에게는 그 잠을 깨는 괴로움을 주는 것을 사과해야겠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2016년 세밑. 책꽂이에서 고 리영희 선생(1929~2010)의 <우상(偶像)과 이성(理性)>을 꺼내 펼쳐본다. 1980년에 나온 증보 1판이다. 누렇게 색이 바랬다. 참회록 같은 서문이 한국 상황과 겹치면서 칼날이 돼 폐부에 꽂힌다.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진실을 알리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다. 선생이 서문을 쓴 때는 유신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1977년 9월이었다. 그럼에도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펜으로써 언론통제와 반공 이데올로기에 맞서 우상 깨기에 전념해 온 선생은 결국 2년간 투옥됐다. 앞서 나온 <전환시대의 논리> <8억인과의 대화>와 함께 이 책으로 ‘반정부 의식화의 원흉’이 됐기 때문이다. 이 세 권의 책에는 금서라는 족쇄가 채워졌다. 하지만 당대 지식인과 대학생들에게는 진실을 바라보게 하는 길잡이였다. 향후 민주화의 씨앗이 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 선생은 2년여 뒤 나온 증보판 서문에 이렇게 썼다. “…글들이 아직도 적지 않은 독자들의 환영을 받고, 또 새로운 독자들에 의해서 읽혀지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이 사회의 가면을 벗지 않은 많은 우상이 버티고 서 있다는 증거라 하겠다.” 초판과 증보판이 나온 사이에 10·26이 있었다. 박정희 체제가 몰락한 기쁨도 잠시, 선생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우상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우상과 이성>이 나온 지 약 40년이 지났지만 그동안은 우상이 지배한 시대였다. 특히 올해는 여느 때보다 선생의 지적대로 “현실에 가려진 허위를 벗기는 이성의 빛과 공기가 필요한” 해였다. 40년 가까이 버텨온 우상과 건곤일척의 대결이 펼쳐졌다. 그 우상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더부살이해 온 딸이었다. 대를 걸쳐 최고지도자가 된 우상은 비정상의 정점을 달렸다. 마침내 임계점을 넘어섰다. 우상은 껍데기를 벗고 실체를 드러냈다. 잠자고 있던 이성도 깨어났다. 실체를 드러낸 우상과 이성의 대결. 이성의 승리였다. 이성의 힘이 없었다면 우상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가면을 벗지 않을지도 모른다. 동굴에 갇힌 죄수를 밖으로 나오게 하는 힘이 태양이었듯, 우상에 짓눌려 온 시민들을 일깨운 것은 촛불이었다. 리영희 선생 식으로 말하면 촛불이야말로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였다.

“이제 하늘을 덮었던 짙은 먹구름의 한 모서리가 뚫리고, 희미하게나마 밝은 햇빛이 내리비치기 시작했다.” 리영희 선생이 <우상과 이성> 증보판 서문에서 밝힌 박정희 정권의 몰락에 대한 소회다. 올해 촛불혁명은 박근혜 대통령을 청와대에 유폐시켰다. 박정희-박근혜 부녀 신화의 붕괴는 한 줄기 빛이다. 하지만 선생의 말처럼 깨뜨려야 할 우상은 곳곳에 남아 있다. 낡은 우상은 깨뜨려야 한다. 낡은 우상이 더 이상 이성을 지배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파사현정(破邪顯正). 사악한 것을 깨뜨려 없애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2016년은 파사현정을 위한 첫발을 내디딘 해였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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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24&artid=201612191805271#csidx6c059a4297753f18ff300af1cc85e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