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졸업논문이 리포트와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한 글을 읽고 무릎을 친 적이 있다. 일본의 사상가이자 대학교수인 우치다 다쓰루(內田樹)가 해마다 졸업논문을 지도할 때 대학생들에게 들려준다는 내용이다. ‘반지성주의자들의 초상’(<반지성주의를 말하다>, 이마, 2016)에 실린 글을 요약하면 이렇다. ‘논문과 리포트의 차이는 우선 읽을 대상에 있다. 리포트는 교수만 본다. 따라서 거짓을 쓰든, 읽지 않은 책을 읽은 것처럼 쓰든, 인터넷에서 글을 복사해 붙이든, 담당교수만 알아채지 못하면 된다. 반면 논문은 담당교수만 보는 게 아니다. 만인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데이터가 잘못되거나, 인용 문헌의 제목이 틀리거나,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게 서술하면, 만에 하나 담당교수가 그냥 넘어갔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지적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논문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독자들’을 위해 써야 하고, 논문을 쓸 때 여러분은 최종 소비자가 아니라 전달자라는 것이다.’
탁견이 아닐 수 없다. 내 경험이나 한국과 다른 일본 상황은 차치하고라도 ‘졸업논문의 재발견’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내가 이 글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독자들’, ‘최종 소비자’와 ‘전달자’라는 개념이다. 2017년 대선주자들을 분석하는 데 유용할 것 같아서다. 주지하다시피 2017년 정유년은 ‘민주화 30년, IMF사태 20년, 보수정권 10년차’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해다. 무엇보다도 국운이 걸려 있는 대선의 해이기도 하다. 이번 대선은 헌재의 대통령 탄핵심판에 따라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조기대선은 촛불혁명이 이뤄낸 성과를 완성 짓는 과정의 끝이다. 이미 정치시계는 조기대선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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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24&artid=201612271523241#csidxca2e731f01fef7b94631535e740c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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