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달아 치러진 프랑스와 영국의 총선 결과는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준다. 에마뉘엘 마크롱이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일으킨 돌풍은 총선에서도 이어졌다. 마크롱이 지난해 4월 창당한 정당 리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공화국)는 지난 11일 치러진 총선 1차 투표에서 압승했다. 오는 18일 2차 결선투표에서 전체 의석(577석)의 3분의 2가 넘는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출구조사가 예측했다. 창당한 지 1년2개월밖에 안된 정당이 한 달 사이에 행정부와 의회를 장악하는 현상은 현대 정치사에 유례없는 일이다. 가히 정치혁명이라 할 만하다. 반면 지난 8일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집권 보수당은 예상과 달리 과반 의석조차 잃는 등 참패했다. 조기 총선을 강행한 테레사 메이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좁아졌다. 유럽연합 탈퇴를 의미하는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승리한 보수당으로서는 1년도 안된 시점에서 믿기지 않는 결과에 아연실색하고 있다. 19일부터 진행될 브렉시트 협상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마크롱의 잇단 돌풍은 기성 정당 및 정치인에게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의 새 정치에 대한 갈망을 반영한다. 그만큼 공화·사회당 중심의 기존 정당체제는 프랑스 유권자들의 열망을 읽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반면 신생 정치인 마크롱은 유권자들의 기대와 시대의 요구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새 정치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공천혁명을 이뤄냈다. 공천자의 절반을 여성과 시민사회 출신 전문가로 채운 것이다. 영국 보수당 패배의 직접적인 원인은 메이 총리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는 노인요양 지원 축소 공약(일명 치매세)을 발표했다가 논란이 되자 철회함으로써 지도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홀로 토론을 거부하는 오만도 부렸다. 그 결과 의석은 물론 신뢰도 잃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브렉시트에 대한 유권자의 태도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데 있다. 그러나 이번 총선으로 기사회생한 노동당은 보수당의 긴축정책과 불평등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결국 젊은 유권자의 마음을 돌아서게 했다.
두 나라의 총선 결과가 시사하는 점은 변화하는 현실이나 유권자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은 좌파든 우파든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크롱의 성공과 메이의 실패보다 이를 더 잘 보여주는 사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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