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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런던 아파트 화재가 드러낸 영국 신자유주의의 폭력성(170617)

지난 14일 새벽에 발생한 런던 그렌펠타워 아파트 화재 참사는 그동안 감춰져 있던 영국 사회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번 참사는 화재경보기 미작동, 스프링클러 미비, 당국의 화재 위험 경고 묵살 등이 얽혀 일어난 전형적인 인재(人災)다. 희생자도 대부분 이민자와 저소득층이다. 이는 이번 참사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영국인들의 분노가 참사의 원인인 사회 구조적 모순과 이를 외면해온 보수당 정부를 향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번 참사가 세계 금융중심지 런던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렌펠타워는 신자유주의가 낳은 빈부격차 및 사회 양극화의 상징물이다.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지원주택인 이 아파트는 런던 최고 부촌 인근에 위치해 있다. 런던에 전 세계 자본가들이 몰려들면서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렌펠타워가 속한 자치구의 부동산 가격은 영국 전체 평균의 6배가 넘는다. 특히 그렌펠타워와 인근 부촌의 시세 차이는 약 20배나 된다. 소득 대비 임대비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렌펠타워는 주변부로 전락한 이민자와 저소득층에게 마지막 피난처였다. 


문제는 당국의 공공지원주택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데 있다. 아파트는 자치구가 소유하지만 보수·유지 등 관리는 민간 관리전문회사가 맡는 구조 때문이다. 이 같은 이분화된 체계에서 주민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2013년부터 화재 위험에 대해 주민들이 호소했지만 당국이 무시해왔다는 사실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이번 화재가 급속도로 번지게 된 원인으로 지목되는 값싼 외장재 공사가 주변 미관을 위한 것이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도 드러났다. 자본의 횡포와 그로 인한 희생을 이보다 잘 보여주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가져온 긴축정책도 이번 참사의 중요한 원인이다. 긴축정책은 공공예산 삭감을 낳고, 이는 사회 인프라 투자 및 저소득층 복지 예산 감소 등으로 이어지면서 저소득층을 한계상황으로 내몰았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영국 안에서 긴축정책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렌펠타워 참사는 신자유주의에 내몰린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던지는 경고다. 이번 참사를 겪고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똑같은 일이 언제든 반복될 수밖에 없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6162234005&code=990101#csidx7398d3de080628cb12d122bb1588d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