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과 경남 통영. 두 도시를 아우르는 인물이 있다.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1917~1995)이다. 선생은 통영에서 음악적 소양을 길렀고, 베를린에서 꽃을 피웠다. 선생에게 두 도시는 둘이 아닌 하나였다. 베를린에는 윤이상 하우스가 있고, 통영에는 선생의 이름을 딴 거리와 기념공원이 있다. 해마다 선생을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도 열린다. 두 도시를 연결하는 또 다른 상징물이 생겼다. 동백(冬栢)나무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을 방문한 김정숙 여사가 지난 5일 베를린에 있는 선생의 묘소를 찾아 통영에서 가져간 동백나무를 기념으로 심었다. “선생이 살아생전 일본에서 타신 배로 통영 앞바다까지만 와보시고 정작 고향땅을 못 밟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많이 울었다. 그래서 고향 통영에서 동백나무를 가져왔다. 선생의 마음도 풀리시길 바란다.”
주로 11월~3월 꽃 피는 동백나무의 꽃말은 열정과 냉정을 담고 있다. 그래선지 예로부터 문인과 예술가들의 단골소재였다. “눈 속에서도 능히 꽃을 피우네”(이규보 시 ‘동백꽃(冬栢花)’). “목 놓아 울던 청춘이 이 꽃 되어 천년 푸른 하늘 아래 소리 없이 피었나니”(유치진 시 ‘동백꽃’).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이미자 노래 ‘동백아가씨’).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송창식 노래 ‘선운사’).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로 유명해진 프랑스 소설가 뒤마의 <춘희(동백아가씨라는 뜻)>도 있다. 하지만 선생에게는 ‘망향의 한’이 서려 있다. 독일에서 음악공부를 하던 선생은 1967년 간첩조작사건에 연루된다. 동베를린간첩단사건이다. 2년간 국내에서 복역한 뒤 석방돼 독일로 건너가 1971년 귀화했다. 그 이후 흙이 될 때까지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동베를린은 한자로 동백림(東伯林)으로 표기하는데, 한자는 다르지만 동백나무와 발음이 같다.
선생은 동양과 서양, 남과 북을 아우르는 예술가로 추앙받고 있다. 그런데도 한쪽에서는 선생을 친북인사로 낙인찍는다. 북한을 21차례 방문했다는 이유를 든다. 올해는 선생의 탄생 100주년이다. 동백나무가 ‘해원(解寃)의 나무’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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