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주모자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44)와 공모자 4명에 대한 민간재판이 미국을 뒤흔들고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간, 유가족과 시민들 간의 열띤 찬반 논란은 물론 내년 중간선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미 정가의 핵폭탄’이 될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온다.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이 지난 11월13일 모하메드를 비롯한 5명의 테러 용의자들을 관타나모 수용소 내 군사법정이 아닌 뉴욕 맨해튼의 연방법원에서 재판을 받도록 하자 온 미국이 들끓고 있다. 홀더 장관의 발표는 약 3000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미국의 국가안보에 심대한 위협을 준 테러 용의자를 군사법정이 아닌 민간법정에서 다루는 것이 적절한가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낳고 있다. 그러나 이번 재판은 찬반 논란과 별도로 고문에 의한 자백이 증거로 채택되는지, 테러범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지, 모하메드에게 사형이 선고될지 등 재판 과정과 결과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에릭 홀더 미국 법무장관이 11월13일 미 법무부 청사에서 9·11 테러 주모자를 자처하는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를 비롯한 5명의 테러 용의자에 대한 민간재판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모하메드 재판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무엇보다 그가 9·11 관련 테러범 가운데 최대 거물이기 때문이다. 모하메드는 스스로 알카에다의 해외 군사작전책임자를 자처하는 인물로, 오사마 빈 라덴과 매우 가깝다. 그는 9·11 테러 공모 이외에도 2002년 미국 언론인 대니얼 펄 기자 처형을 비롯한 30여 건의 테러 혐의로 2003년 3월1일 체포됐다. 그 후 3년여 동안 중앙정보국(CIA)이 운영해 온 비밀감옥에 수용돼 있다가 2006년 9월 관타나모 수용소로 옮겨졌다. 특히 그는 관타나모에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승인한 강압적인 신문의 한 방법인 물고문을 183차례나 받았다. 한편으로는 이번 재판이 뉴욕타임스의 지적처럼 고문의 도덕성과 관련된 충돌, 외국인 테러범의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 국가 안보와 관련한 사건을 다루는 민간 법정의 능력 등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지타운대 법학 교수인 데이비드 콜은 엄청난 변화를 몰고올 중요한 재판이라고 워싱턴포스트에서 밝혔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어떤 선고가 내려지든 세계는 재판이 적법했다고 볼 것이고, 군사법정은 많은 사람이 공정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듯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 행정부가 공화당과 유가족의 반발, 불투명한 재판 결과 등에도 불구하고 모하메드를 민간 법정에 세우려는 것은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및 군사법정 폐쇄 방침을 밝힌 오바마 행정부의 일관된 정책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재판 승리에 대한 자심감의 표출이기도 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 중이던 11월18일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모하메드 민간재판에 대한 우려는) 그에게 사형이 선고될 때 사라질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반면에 공화당 측은 “국가안보와 대테러와의 전쟁을 후퇴시키는 조치”(존 매케인 상원의원)라며 반발하고 있다. 찬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양측 모두 우려하는 점이 있다. 이번 재판이 미국의 대테러 정책을 성토하고 이슬람의 성전을 선전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모하메드가 군사법정에서 한 대로 “순교자의 길을 가겠다”고 진술할 경우 미국민들은 경악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때문에 재판관이 이번 재판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관한 포럼으로 변모하지 않도록 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재판의 최대 관심거리는 재판 결과다. 장기전이 예상되는 이번 재판은 유죄를 입증해 사형을 구형하려는 검찰 측과 무죄를 입증하려는 변호인단 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된다. 양측 공방전의 핵심은 모하메드의 자백에 고문이 작용했는냐 여부다. 검찰 측은 모하메드에게 유죄를 선고할 근거로 모하메드가 2007년 군사법정 청문회에 제출한 31가지 혐의를 담은 자술서를 제시하고 있다. 모하메드는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의 대니얼 펄 기자 처형을 언급하는 한편 생물방사선 무기를 활용한 추가 테러 계획 등을 밝혔다. 법무부 측은 유죄를 입증할 만한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충분한 증거가 있다면서 사형 선고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반면에 변호인단은 모하메드의 자백이 물고문과 같은 강압적인 고문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미국 민간법정에서는 고문에 의한 자백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검찰이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거나 변호인이 검찰이 제시한 증거가 고문에 의한 자백에 의한 것임을 입증한다면 사형 언도 가능성은 낮아질 수 있다.
9·11 테러 주모자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 = 연합뉴스
모하메드 재판의 전망과 관련해 눈여겨봐야 할 과거 재판이 있다. 9·11 테러의 또 다른 공모자인 자카리아스 무사위 재판이다. 검찰은 모로코계 프랑스인인 무사위에게 사형을 구형했지만 그는 2006년 5월3일 열린 연방 배심에서 사형 선고에 반대한 한 명의 배심원 덕분에 사형을 면했다. 무사위는 이튿날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AP통신은 무사위 재판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은 테러범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무사위조차 자신이 사형을 면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무사위는 “9·11 테러로 인한 나를 향한 미국민의 감정과 분노를 감안하면 사형이 선고될 줄 알았다”면서 “그러나 배심원들이 나에 대한 감정과 혐오를 배제하고 법과 증거에 초점을 맞췄으며, 덕분에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무사위 재판의 또 다른 교훈은 재판이 신속하게 끝나길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무사위는 2001년 12월에 기소됐지만 2006년 5월에야 재판이 종료됐다. 다만 무사위 재판이 모하메드 재판과 다른 것은 무사위가 고문에 의해 자백했다는 혐의가 없다는 점이다.
민간법정이 군사재판과 달리 민간인 배심원의 손에 판단을 맡긴다는 점에서 배심원들의 성향도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뉴욕은 다른 지역보다 리버럴한 성향인 것으로 평가돼 왔다. 단적인 사례가 2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98년 케냐 및 탄자니아 미 대사관 테러 사건 용의자에 대해 평결이다. 2001년 재판에서 뉴욕 맨해튼 연방배심은 예상과 달리 종신형을 평결했다. 맨해튼 연방배심이 마지막으로 사형 평결을 낸 것은 1950년대다. 이번 재판은 9·11 테러가 뉴욕 한복판에서 발생했으며, 뉴욕 시민 대부분이 9·11 테러의 상흔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를 수 있다. AFP통신은 이와 관련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배심원을 찾는 것이 이번 재판에서 또하나의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이무기가 쓴 기사 > 주간경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바마의 ‘마르자 탈환 대작전’ (2010 03/02ㅣ위클리경향 864호) (1) | 2010.02.25 |
---|---|
예멘 알카에다 손보기 ‘미국의 고민’ (2010 01/19ㅣ위클리경향 859호) (0) | 2010.01.12 |
미국 로비스트 ‘물 만난 고기’ (2009 10/27ㅣ위클리경향 847호) (0) | 2009.10.20 |
오바마 미국서 태어난 거 맞다고요(2009 08/18ㅣ위클리경향 838호) (0) | 2009.08.11 |
온두라스 쿠데타 ‘훈수꾼의 대결’(2009 07/14ㅣ위클리경향 833호) (0) | 2009.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