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정치 음모론이 끊이지 않는 나라다. 대표적인 음모론이 인류의 달 착륙은 거짓이라는 주장이다. 달 착륙 40주년을 맞은 지난 7월 이 음모론은 미국에서 다시 한 번 달아올랐다. 비밀결사대로 불리는 프리메이슨이 1700년대 후반에 국가를 장악하기 위해 조지 워싱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것에서 시작된 정치 음모론은 소수 극단주의자들의 행동으로 치부돼 왔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미국 신문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인류의 달 착륙 거짓설을 포함해 △린든 존슨과 쿠바·마피아의 존 F 케네디 암살 배후설 △9·11 테러의 미국 정부 배후설 △뉴멕시코주 로스웰에 불시착한 미확인비행물체의 미국 정부 은폐설 △에이즈는 중앙정보국이 동성애자와 흑인을 죽이기 위해 개발한 전염병설 등을 5대 정치 음모론으로 꼽았다.
정치 음모론 목록에 하나 더 추가해야 할지도 모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출생지에 관한 의혹이다. 흑인인 오바마가 후보로 나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극우 보수파와 공화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음모론이다. 이 음모론을 당당하게 주장하는 단체까지 있다. ‘버더스’다. 이들 주장의 핵심은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오바마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바마의 고향 하와이주 당국이 오바마가 2008년 대선 유세 당시 제시한 출생증명서를 여러 번 확인해 진위는 이미 결론이 난 상황이다. 그럼에도 오바마 출생 의혹은 버더스뿐 아니라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CSM에 따르면 ‘리서치 2000’의 여론조사 결과 공화당원 28%는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다른 공화당원 30%는 ‘확실히 모르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오바마 출생지에 관한 음모론은 최근 CNN방송에서 ‘루 돕스 투나이트’를 진행하는 앵커 돕스가 오바마의 출생 의혹을 없애려면 자세한 출생기록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조지아주의 발도스타 대학에서 정치 음모론을 가르치는 제임스 라플랜트는 CSM과의 인터뷰에서 “매우 무책임한 일”이라면서 “달 착륙 40주년을 기념하는 데 돕스가 ‘우리는 달에 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얼토당토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보수파 언론인과 언론, 정치분석가들도 돕스의 행위에 대해 언론의 역할을 저버린 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다. 돕스는 그러나 오바마가 의혹을 해소하려면 자세한 출생기록을 제시하면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비영리 미디어 감시기구인 ‘미디어 매터스’는 돕스가 “오바마 대통령은 합법적인 미국 출생 증명서가 없다는 잘못된 보수파의 음모론”을 확산하고 있다는 내용의 광고를 제작해 다른 매체에 싣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CNN은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CNN 경쟁사인 MSNBC는 버더스 지도자인 오를리 타이츠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오바마 출생지 의혹을 제기한 CNN 앵커 루 돕스. <연합뉴스>
오바마 출생 의혹과 관련해 버더스가 음모론자들이 제기하는 주장은 과연 무엇일까. 온라인 매거진 <살롱>은 지난 5일자(현지시간)에 8가지 내용을 싣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선 ‘오바마는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오바마가 제출한 출생 증명서가 위조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오바마가 태어날 당시 <호놀룰루 애드버타이저>를 비롯한 2개 신문에 그의 출생 관련 사실이 실렸다. 버더스의 주장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면 오바마의 조부모가 약 50년 전에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출마할 것을 알고 공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와이는 당시 모든 신생아의 출생 사실을 언론에 공표했다. 두 번째로는 ‘오바마의 아버지가 영국 시민이기 때문에 오바마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버더스의 지도자 오를리 타이츠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역사상 미국 시민이 아닌 사람의 자식이 대통령이 된 사례는 있다. 21대 대통령 체스터 아서의 경우다. 아일랜드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아서가 태어나기 전에 10년 이상 미국 시민이 되지 못했다. 세 번째로 ‘오바마가 케냐에서 출생했다는 증명서가 발견됐다’는 점이다. 이것도 타이츠가 공개한 것이다.그러나 두 가지 명확한 증거로 공개 이틀만에 위조된 것으로 확인됐다. 증명서에 명기된 날짜는 1964년 2월17일이다. 그러나 그 당시 영국에서 독립한 케냐의 국명은 케냐 공화국이 아닌 케냐 자치령이었으며, 공개된 증명서는 원래 호주 자료로 위조됐다는 것이다. 네 번째로 ‘오바마의 할머니가 오바마는 케냐에서 태어났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오바마 할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인 새라 오바마가 론 맥래이라는 거리의 설교자와 인터뷰하면서 나왔다. 그러나 의사소통이나 통역의 잘못에 따른 것으로, 오바마 가족은 맥래이에게 시정을 부탁했다. 맥래이조차도 음모론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버더스는 시정하지 않고 있다.
다섯 번째로 ‘하와이주 당국은 부모가 외국 태생 자녀의 출생증명서를 가지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버더스의 비공식적인 웹사이트인 <월드 넷 데일리>의 주장이다. 하와이에서는 외국 태생 아이들의 출생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지만 출생증명서에는 하와이가 아닌 외국에서 태어난 사실이 적시돼 있다. 여섯 번째로 ‘오바마가 인도네시아 여권을 이용해 파키스탄을 여행했다’는 것이다. 오바마가 어릴 때 인도네시아에서 살았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국적을 얻었거나 미국 국적을 포기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오바마가 파키스탄을 여행한 것은 사실이다. 1981년에 대학 친구와 함께 갔지만 당시 파키스탄은 미 국무부가 지정하는 여행 금지국도 아니었으며, 파키스탄은 비자만 받으면 누구나 여행할 수 있었다. 일곱 번째로 ‘오바마는 출생증명서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출생증명서의 영어 표기에 관한 것이다. 출생증명서는 영어로 ‘birth certificate’ 또는 ‘certification of live birth’로 표현하는데 오바마는 전자가 아닌 후자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연방정부가 인정하는 출생증명서의 영문 표기는 후자다. 마지막으로 ‘오바마의 출생증명서를 공개하면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하와이주 당국이 오바마의 출생증명서 원본을 공개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출생증명서는 당사자의 허가 없이 공개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다. 더욱이 오바마는 이미 자신의 출생증명서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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