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개최를 두고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조 후보자의 국회 기자간담회-조 후보자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실패-자유한국당의 조 후보자 해명 반박 기자간담회-청와대의 재송부 요청-조 후보자 인사청문회 합의….
고위 공직자의 인사청문을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한국보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검증과정이 먼저 시작되고 발달된 미국도 행정부마다 각료 인준을 둘러싸고 진통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장관을 비롯한 고위공직자가 되려면 상원의 인준을 통과해야 한다. 미국 헌법은 장관 등 중요 공직자에 대한 인사권을 대통령과 의회가 공유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고위공직자 지명권을 갖고, 상원은 인준 권한을 행사한다. 대통령이 측근을 임명해 시민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다. 상원의 인준을 받아야 하는 공직(PAS)은 2012년 미 의회조사국(CRS)의 조사에 따르면 1200~1400개다. 차관보급 이상 공직자, 연방대법관, 연방검사 및 판사, 중앙정보국(CIA) 국장, 연방수사국(FBI) 국장, 각국 대사 등이 포함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 1일(현지시간) 워싱턴 연방재난관리청(FEMA) 본부에서 허리케인 도리안에 관한 브리핑 중 얘기를 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40년 동안 역대 대통령 가운데 고위공직자의 상원 인준을 피하기 위해 ‘대행제도’를 가장 많이 활용했다. 피트 게이너 현 FEMA 청장도 대행 꼬리를 달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남용하는 트럼프… 지난 40년간 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경우 9월 5일 현재 23개 각료·각료급 부서 가운데 5곳은 장관 또는 최고위직이 공석 중이다. 정확히 말하면 ‘대행’ 체제로 운영 중이다. 미국의 특이한 제도 가운데 하나가 대통령이 상원 인준을 우회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는 점이다. 바로 ‘대행(acting)’ 제도다. 이 제도에 따라 미 대통령은 일정 기간 동안 대행 체제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제도를 여느 전임자보다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지난 7월 23일까지 약 7개월 동안 장관이 없었다. 지난해 말 전임자인 제임스 매티스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불화로 사임한 뒤 빚어진 미 국방부의 ‘장관 부재사태’는 이날 마크 에스퍼 장관이 상원 인준을 받아 취임함으로써 해소됐다. 그동안 미 국방부는 장관대행 체제로 운영됐다. 패트릭 섀너핸 대행이 올해 1월 1일부터 6월 23일까지 173일간, 마크 에스퍼 대행이 6월 24일부터 7월 15일까지 21일간, 러처드 스펜서 대행이 7월 15일부터 23일까지 8일간 각각 장관대행을 지냈다. 미 국방부의 2019 회계연도(2018.10.1~2019.9.30) 예산은 6860억 달러다. 한국 1년 예산(약 470조원)의 1배 반 이상을 쓰는 미 국방부에서 대행 체제가 빚어진 것은 1989년 3월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이후 약 30년 만이었다. 세계의 경찰 미국의 전위대인 국방부에서 7개월간 지속된 장관대행 체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민낯을 잘 보여준다.
트럼프 행정부의 각료(15명)와 각료급(8명) 중 대행은 9월 5일 현재 각료 2명, 각료급 4명 등 모두 6명이다. 각료 2명은 패트릭 피젤라 노동부 장관(7월 20일~)과 케빈 매컬리넌 국토안보부 장관(4월 1일~)이다. 각료급은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을 겸하고 있는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조지프 매과이어 국가정보국장(DNI), 크리스 필커턴 중소기업국장, 조너선 코언 유엔대사다. 이 가운데 상원 인준이 필요 없는 비서실장을 제외하면 5명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민정책 집행기구인 시민이민국(CIS)과 이민세관단속국(ICE), 연방 재난 대처기구인 연방재난관리청(FEMA), 식품의약국(FDA) 등 주요 기관의 수장도 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를 비롯해 역대 행정부가 얼마나 많은 대행을 임명했는지에 관한 자료는 없다. 하지만 크리스티나 커낸 미 예일대 정치학과 신임교수의 박사논문 ‘인준 없는 통치: 대통령의 임명직 공석의 정치’을 보면 그 실태를 알 수 있다. 커낸 교수는 1977년 지미 카터 행정부부터 트럼프 집권 전반부인 올해 4월까지 각료를 분석했는데, 총 226명 중 79명이 대행이었다. 10명 중 3명 꼴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경우 42명 중 22명이 대행으로, 대행 비율은 50%가 넘는다. 트럼프 집권기간은 조사기간 40년에 비하면 20분의 1에 불과하지만 대행 비율은 전체의 4분의 1이나 된다. 커낸 교수는 AP통신에 “새롭지는 않지만 상당히 높은 수치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행 체제에 대한 미 언론의 관심도 크다. NBC방송의 8월 초 보도를 보면 트럼프의 23개 각료·각료급 가운데 14개가 대행 체제를 경험했다. 그 가운데 각료는 8개다. 이는 아들 부시나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보다 많다. 지난 7월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취임 후 2년 반 동안 상원의 인준을 받은 각료들로 채워진 내각이 존속한 기간은 불과 약 4개월에 불과하다. 특히 미-멕시코 국경에서 이민자 처우문제를 다루는 국토안보부 장관의 경우 현 매컬리넌 대행은 트럼프 취임 이후 네 번째다. 각료급이 아닌 고위직으로는 ICE 국장의 경우 5번이나 교체됐는데, 5번 모두 대행이다. 잡지 <뉴리퍼블릭>은 트럼프의 대행 남용을 빗대 ‘임시직으로 운영되는 행정부’라는 제목을 달기도 했다.
지난 7월 23일 취임해 약 7개월간 이어진 ‘장관 부재사태’를 끝낸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왼쪽)이 8월 9일 국방부 청사에서 정경두 국방장관과 회담을 하기 전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대행제도 가능하게 해준 연방공석개혁법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 최고직의 상원 인준을 피해 대행을 임명하는 것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상원 인준을 받지 않아도 되는 예외 덕분이다. 바로 1998년 의회가 만든 연방공석개혁법(FVRA)이다. 이 법은 대통령에게 장관을 비롯해 연방 최고직이 공석일 경우 임시적으로 최고책임자를 임명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역대 대통령은 상원 인준 기간 동안 부서의 지도력 공백을 막기 위해 이 법을 활용해 왔다. 기간을 더 연장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은 있지만 대행은 최대 210일까지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이 제한을 정하게 된 것은 1997년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빌 랜 리 변호사를 법부무 시민권 담당 차관보로 지명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인권변호사인 리 차관보 지명자는 소수자 우대정책 지지자였다. 이것이 논란이 되면서 인준이 지연되자 의회는 이듬해인 1998년 대행 재직기간을 210일로 제한했다. 그는 무려 2년 반 동안 상원의 인준을 받지 않은 채 차관보로 재직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좋아하는 인사를 연방정부 책임자로 앉히기 위해 때로는 상원의 묵인하에, 때로는 상원의 바람에 도전해 대행제도를 여느 대통령보다도 많이 활용했다. 가장 논란이 된 사례가 지난 5월 켄 쿠치넬리 전 버지니아주 법무장관을 국토안보부 산하 CIS 국장대행으로 임명한 경우다. 트럼프는 당초 그를 CIS 국장에 임명하려고 했으나 상원 공화당의 반대가 불을 보듯 뻔해 대행으로 지명할 수밖에 없었다. 강경 이민반대주의자인 쿠치넬리는 트럼프의 바람대로 지난 3개월여 동안 트럼프의 이민정책을 집행해 트럼프 비판자들의 반발을 샀다. 공정한 이민정책 수립을 위한 정부 기구인 ‘이미그레이션 허브’의 케리 탤보트 국장은 의회 전문지 <더힐>에 “상원의원들이 그에게 표를 주지 않기 때문에 그는 인준을 받지 못할 것”이라면서 “그는 트럼프의 메시지를 확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고, 이는 CIS의 임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행 체제로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 우선 상원 인준과정에서 불가피한 정치적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또 상원 인준을 받지 않고도 논란이 되는 정책 집행을 위해 측근을 심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자기 맘대로 언제든지 대행을 경질시킬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트럼프는 대행 체제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행 체제가 국정 운영에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어 도움이 된다는 입장을 수없이 강조해왔다. 트럼프는 지난 8월 30일 기자들에게 “대행 체제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대행은 상임직에게 없는 굉장한 유연성을 준다”고 말했다. 지난 2월 CBS <밋더프레스>에 출연해서는 “나는 매우 빨리 움직일 수 있어서 대행을 좋아한다”고 했다. 앞서 1월 6일 연방정부 부분폐쇄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캠프 데이비드 별장으로 떠나기 전에는 “나는 대행을 좋아한다. 그것이 더 많은 유연성을 준다”고 했다.
■고위직 이직률도 전임 행정부보다 높아
하지만 트럼프가 상원 인준을 피해 자신의 측근이나 자기 말을 잘 듣는 인사를 앉혀 자신의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한 수단으로 대행제도를 활용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대행은 상원 인준을 통과한 인사와 똑같은 권한을 갖지만 정식 장관이나 책임자 체제보다 책임감을 갖고 주요 정책을 추진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해당 부서를 행정적으로 불확실한 상태에 빠지게 만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폐해를 막기 위해 현 대행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스티브 블라덱 텍사스대 법대 교수는 지난 6월 로페어 인스트튜트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210일인 대행 직무기간을 60일로 줄이고, 의회가 대행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줄여야 한다는 것 등을 대안으로 들었다. 비영리 옹호기구인 프로텍트 디모크러시는 전임자가 경질됐을 경우에는 후임자를 대행으로 지명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백악관 고위직과 각료의 이직이 전임 행정부보다 잦다는 점이다.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캐스린 던 텐퍼스 선임연구원이 지난 8월 발표한 ‘트럼프 행정부의 이직률 추적’ 자료를 보면 8월 2일 현재 백악관의 주요 보직자 65명 가운데 트럼프 취임 이후 49명이 떠났다. 이직률은 75%다. 이는 전임 대통령들의 4년 임기 동안보다도 높은 편이다. 로널드 레이건의 경우 4년간 78%, 아버지 부시는 66%, 빌 클린턴은 74%, 아들 부시는 63%, 버락 오바마는 71%를 기록했다.
각료직의 경우 장관이 바뀐 경우는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2년 4개월 만인 지난 5월 21일 기준으로 총 9명이다. 이는 전임자(4년간)인 레이건(6명), 아버지 부시(8명), 클린턴(4명), 아들 부시(2명), 오바마(3명)보다도 더 많은 수치다. 집권 연차별로는 1년차에는 국토안보부와 보건부 장관이, 2년차에는 국무부·보훈부·법무부·국방부 등 4곳 장관이, 3년차인 올해는 국토안보부와 노동부 장관이 바뀌었다.
삼권분립에 기초한 미국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막강하다. 이는 의회가 대통령에게 견제받지 않는 예외적인 권한을 인정해준 덕분이다. 입법과 비슷한 효력을 지니는 대통령의 행정집행 명령권한인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이 대표적이다. 대행제도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원 인준을 피할 수단으로 대행제도를 남용하고, 행정부 내 고위직을 자주 바꾸는 행위의 결과는 무엇일까? 혜택은 이해당사자들이 누리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올 뿐이다.
조찬제 선임기자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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