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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월드프리즘

[월드 프리즘28] 트럼프의 '사우디 퍼스트' 중동정책의 결과는?(191007/주간경향 1346호)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이 공격받았다. 범인이 누군지 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검증을 믿어 장전 완료된(locked and loaded) 상태에 있다. 다만 누가 이 공격을 일으켰다고 사우디가 생각하는지, 우리가 어떤 조건 하에서 진행할지 등에 대해 사우디로부터 소식을 듣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다.”

사우디 석유시설이 드론 공격을 받은 다음날인 지난 9월 1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미국으로서는 언제든 군사적 행동에 나설 준비가 돼 있지만, 사우디가 드론 공격의 범인을 확증하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따라 움직일 것이라는 의미다. 외신들은 미국이 군사적 대응을 시사한 것은 처음이며, 미국이 보복할 준비가 돼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이 범인으로 지목한 국가는 당연히 이란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5월 20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왕궁에서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으로부터 ‘압둘아지즈 국왕 훈장’을 받고 있다. 트럼프가 취임 후 첫 국빈방문국으로 사우디를 선택한 것은 트럼프와 사우디 왕가의 오랜 밀월관계를 보여준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하지만 트럼프가 미국의 군사개입 결정을 다른 나라 정부의 판단에 맡겼다는 비판도 나왔다.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 인터넷 매체 ‘인터셉트’는 9월 18일 ‘MBS(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의 영문 약자)가 명령을 내릴 때 트럼프는 이란과 전쟁을 시작하길 원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전쟁선포권은 의회에 있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이를 무시했다”면서 “그러나 아무도 그 권한을 외국에 넘기지는 않았다”고 꼬집었다.

1990년대 초부터 왕가와 끈끈한 관계

트럼프의 첫 트위터 반응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트럼프와 사우디의 오랜 밀착관계다. ‘트럼프-사우디 커넥션’은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부터 주목을 받았다. 이해충돌 때문이다. 트럼프는 늘 그렇듯 “사우디와 금전적 이해관계는 없다”고 넘어갔지만 사우디 석유시설에 대한 드론 공격의 배후로 이란이 거명되면서 ‘트럼프-사우디 커넥션’이 또다시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1년 전 돈독하던 양자 간 관계에 찬물을 끼얹은 ‘자말 카슈끄지 피살사건’ 1주년(10월 2일)을 계기로 삐걱거렸던 관계를 반전시키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사우디 왕가는 트럼프의 오랜 사업 파트너였다. 특히 트럼프가 사업상 위기에 처할 때마다 사우디 왕가는 도우미 역할을 자처했다. 트럼프가 사우디 왕가로부터 처음 사업적 도움을 받은 때는 1991년으로 거슬러간다. 미국 온라인 매체 ‘쿼츠’에 따르면 그해 트럼프는 카지노 사업과 첫 부인 이바나와의 이혼 등으로 9억 달러 상당의 빚을 지고 있었다. 트럼프로서는 돈이 되는 곳이면 어디에나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때 트럼프의 손을 잡아준 이가 사우디 왕자 가운데 최고 부자인 알왈리드 빈 탈랄 킹덤홀딩컴퍼니 회장이었다. 그는 트럼프 소유의 호화 요트 ‘트럼프 공주’호를 약 1800만~2000만 달러에 매입했다. 이 요트는 트럼프가 3년 전 브루나이 왕으로부터 샀는데, 당시 매입가는 2900만 달러였다. 1000만 달러 가까이 손해를 보고 팔 만큼 트럼프의 재정상태는 최악이었던 셈이다.

1995년에도 트럼프의 재정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이때도 알왈리드 빈 탈랄이 구세주가 됐다. 그는 트럼프 소유인 뉴욕 맨해튼의 플라자 호텔 지분 51%를 사들였다. 이 거래로 트럼프는 1억2500만 달러의 빚을 탕감할 수 있었다.

사위 쿠슈너와 사우디 왕세자는 절친

두 차례나 트럼프에게 구세주가 됐던 알왈리드 빈 탈랄은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세계에서 74번째 부자다. 그는 2017년 11월 MBS 왕세자가 반부패 캠페인을 명목으로 왕자와 장관 등 사우디 주요 인사 수백 명을 리츠칼튼 호텔에 잡아 가둔 ‘궁중 쿠데타’ 당시 구금됐다가 재산을 국가에 헌납한다는 약속을 한 뒤 풀려난 바 있다.

트럼프는 2001년 6월 뉴욕 맨해튼에 있는 트럼프타워 45층 전체를 사우디 왕실에 팔았다. 당시 매각가는 450만 달러였다. 방 10개와 화장실이 13개나 있는 아파트 5채였다. 이 뉴스를 2016년 9월 특종 보도한 <뉴욕데일리뉴스>에 따르면 아파트 한 채의 편의시설 비용은 1년에 8만5585 달러다. 트럼프는 45층 전체를 팔아 2001년 이후 편의시설 비용만으로도 570만 달러의 수익을 거뒀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45층 전체는 2008년 사우디의 유엔대사관 일부로 바뀌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사우디 정부의 지원은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4일자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지 한 달쯤 지난 2016년 12월 사우디 정부가 로비스트들을 위해 워싱턴에 있는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방 500개를 예약했다. 호텔비는 총 27만 달러였다. 이 호텔을 예약한 한 로비스트는 <워싱턴포스트>에 트럼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호텔 투숙료를 깎아준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호텔 예약은 외국 정부로부터 부당한 돈을 받아 헌법을 위배했다는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트럼프는 자신과 사우디와의 커넥션이 제기될 때마다 늘 부인했다. 그러나 2015년 말 트럼프는 앨라배마주 모빌에서 열린 유세 도중 고의인지 무심코인지 사우디와의 관계를 자랑하는 말을 쏟아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나는 아주 잘 지내왔다. 그들은 나로부터 아파트를 구입했다. 그들은 4000만 달러, 5000만 달러를 쓴다. 어떻게 그들을 싫어할 수 있나? 나는 그들을 아주 좋아한다.”

트럼프는 취임 후 첫 국빈방문국으로 사우디를 선택했다. 2017년 5월 20~21일 사우디를 방문한 트럼프는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과 약 1100억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의 무기를 수출하기로 합의하고 서명했다. 당시 행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트럼프의 사우디 방문을 적극적으로 주선한 이가 사위이자 백악관 선임고문인 재러드 쿠슈너였다.

2016년 11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사우디 정부 관계자들이 미국을 방문했다. 차기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를 다지기 위한 정지작업 차원이었다. 사우디 대표단은 트럼프의 사우디 국빈방문, 사우디의 미국 무기 구매, 사우디의 미국 인프라 투자 등을 제안했다. 사우디 정부의 미국 핵심 채널이 쿠슈너였다. 쿠슈너는 2017년 3월 트럼프와 MBS의 백악관 오찬을 성사시켰다. 이날 쿠슈너와 MBS의 만남은 MBS의 꿈인 왕세자 승계문제의 전환점이 돼 MBS는 그해 6월 사우디 왕세자가 됐다.

쿠슈너(38)와 MBS(34)는 유대인과 무슬림이지만 동년배에다 야망이 넘치고, 최대 권력자를 등에 업고 있으며, 막대한 재산에 취향도 비슷하다는 것 등 닮은 점이 많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12월 쿠슈너와 MBS의 돈독한 관계를 분석하는 기사에서 “두 사람이 사적이고 비공식적인 문자메시지와 전화통화를 하는 사이”라면서 심지어 카슈끄지 사건이 일어난 뒤에도 이 관계는 이어졌다고 전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사우디 석유시설 드론 공격을 받은 다음날인 9월 15일 올린 트위터 글/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쿠슈너는 트럼프 취임 이후 사우디를 여러 차례 찾았는데, 일부 방문은 논란이 됐다. 2017년 10월 말 방문이 대표적 사례다. 쿠슈너가 MBS에게 그를 싫어하는 이들의 명단을 넘겨줬으며, 일주일 뒤인 11월 초 MBS가 이를 근거로 ‘궁정 쿠데타’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올해 2월 말 사우디 방문도 논란이 됐다. 지난해 10월 2일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 주재 사우디대사관에서 피살된 이후 MBS와의 첫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 인터넷 매체 ‘데일리비스트’에 따르면 사우디 주재 미대사관조차 쿠슈너의 일정이나 누구를 만나는지에 관한 정보가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쿠슈너 팀의 경호는 사우디 정부가 맡았다. 이 때문에 미 의회 일각에서도 쿠슈너가 국왕과 왕세자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몰라 분노했다는 것이다. 백악관 측은 미국과 사우디 협력 증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촉진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2016년 대선 전까지만 해도 중동에서 쿠슈너의 관심국은 이스라엘이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쿠슈너 가족의 친구였다. 사우디에 대해 무지했던 쿠슈너가 사우디 왕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미국 핵기술의 사우디 판매 허용, 중동의 또 다른 우방인 카타르와 사우디의 불화, 사우디의 예멘사태 개입 등 중동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쿠슈너와 MBS의 밀월관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쿠슈너가 MBS 손 안에 놀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MBS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왕세제인 무함마드 빈 자예드에게 “쿠슈너는 내 주머니 안에 있다”고 말했다고 <인터셉트>가 보도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쿠슈너와 사우디 왕가의 관계에 대해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재러드는 사우디와 사업을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젊다. 재러드는 그(MBS)를 잘 모르거나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투자 포럼 참석, 카슈끄지 갈등 털어내나

사우디 석유시설이 드론 공격을 받은 지 일주일 뒤인 지난 9월 21일 <워싱턴포스트>는 쿠슈너가 10월 말 ‘사막의 다보스’로 불리는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사우디 수도 리야드를 방문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당초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을 비롯한 대표단을 포럼에 보내려고 했으나 지난해 10월 2일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이자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 주재 사우디대사관에서 피살된 사건이 터지면서 이 포럼을 보이콧했다.

카슈끄지 사건은 돈독하던 트럼프와 사우디 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 사건의 주도자가 MBS로 드러나면서 서방과 사우디의 관계는 악화됐다. 그러나 트럼프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여 분노를 샀다. 트럼프와 쿠슈너, MBS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미국의 중동정책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사우디 왕세자 MBS(왼쪽)와 트럼프 미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 게티이미지


<워싱턴포스트> 보도가 사실이라면 미국은 1년 만에 다시 이 포럼에 참석하게 된다. 이는 곧 카슈끄지 사건을 둘러싸고 멀어졌던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 개선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쿠슈너의 이번 포럼 참석은 지난 6월 바레인에서 열린 경제 워크숍 ‘평화에서 번영으로’에 사우디 사절단을 보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신문은 보도했다. 이 워크숍은 미국이 중동 평화 노력의 일환으로 개최한 것으로, 쿠슈너는 회의가 성사되는 데 도움을 줬다고 한다. 이번 포럼에는 미국 측에서는 쿠슈너를 비롯해 므누신 장관, 트럼프의 오랜 절친 톰 배럭 콜로니 캐피털 회장,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 에릭 캔터 전 하원의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9·11 테러로 소원해던 사우디를 중동의 새로운 강자로 만든 이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다. 부시는 2006년 ‘새로운 중동’ 계획을 밝혔다. 요약하면 중동지역에서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동의 최대 위협인 이란 봉쇄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이란을 약화시키기 위한 비밀작전을 수행했다. 그 결과 수니파의 좌장인 사우디의 역할이 강조됐고, 이란이라는 공동의 적에 대처하기 위해 앙숙이던 사우디와 이스라엘도 전략적 협력을 모색하게 됐다.

트럼프가 사우디 석유시설 피격을 빌미로 이란을 공격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미 대통령으로서 사상 네 번째 탄핵절차 대상이 된 트럼프로서는 이란 공격 카드를 더욱 만지작거릴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트럼프와 사우디의 긴밀한 관계가 중동 평화의 불안요소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조찬제 선임기자 helpcho6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