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이 짓눌려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된 대규모 항의 시위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미 주요 도시에서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는 시위가 약탈과 방화 등 폭력사태로 번지면서 1992년 백인 경찰들의 흑인 로드니 킹 구타사건으로 촉발된 로스앤젤레스 폭동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시위대는 당국의 야간 통행금지령과 군대 투입 등 강력 대응 방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요 도시에서 공권력에 맞서고 있다. 백인 경찰의 흑인에 대한 공권력 남용이라는 불만을 넘어 누적된 구조적 차별을 향한 분노의 표출임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인종 갈등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공공장소에서의 흑백 분리와 차별을 규정한 ‘짐크로법’은 시민권 운동의 결과 1965년에 폐지됐다. 하지만 미 사회 전반에 보이지 않는 흑인에 대한 차별은 깊이 뿌리내려왔다. 흑인들은 공권력 행사에서 차별받았을 뿐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의 희생자였다. 플로이드 사건으로 그 구조가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2008년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지만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2014년 퍼거슨 사태, 2015년 볼티모어 폭동은 버락 오바마 재임기에 일어난 대표적인 인종 갈등이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는 흑인의 구조적 차별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10만명이 넘는 코로나19 희생자 중 흑인은 백인보다 약 3배 많았다. 20%에 가까운 실업률의 최대 희생자도 흑인이다.
또 다른 문제는 미국을 이끌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인종차별주의를 부추긴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2016년 국민의례에 대한 거부의 표시로 무릎 꿇기를 한 흑인 미식축구선수 콜린 캐퍼닉을 비난하는 등 인종차별을 정치적으로 활용해왔다. 대통령이 된 뒤인 2017년 8월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사태 때에는 백인우월주의자를 지지했다. 이번 사태에서도 배후로 극좌 ‘안티파’를 지목하고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는 등 인종차별주의적 태도를 감추지 않았다. 통합의 리더십을 보이는 대신 사태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면서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각계의 비난은 당연한 일이다.
이번 사태가 미국의 인종주의를 바로잡는 전환점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새로운 정상(뉴노멀)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종·신분과 관계없이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했다. 대규모 항의시위는 이를 바라는 미 시민들의 강력한 의사 표시다. 트럼프가 시위 진압을 위해 군대를 절대로 투입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 시민들이 이 시위를 지지하며 그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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