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밤 부산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지하차도가 침수되면서 시민 3명이 사망했다. 이날 오후 10시20분쯤 동구 초량동 부산역 인근의 지하차도가 갑자기 내린 비로 침수되자 때마침 지나던 차량 7대가 갇히면서 3명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변을 당한 것이다. 차량이 지하차도에 진입한 지 불과 10여분 만의 일이었다. 이날 오후 8시 부산 지역에는 호우경보가 발령된 가운데 많은 비가 내렸다. 시간당 강수량은 81.6㎜로, 1920년 이후 10번째로 많았다. 아무리 갑작스러운 집중호우 때문이라지만 부산시가 선제적으로 대응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너무나 안타깝다.
사고가 난 지하차도는 부산 내 대표적인 상습 침수지역이다. 매립지에 건립된 데다 지상보다 낮아 폭우 때마다 안전사고 우려가 일었다. 당연히 침수에 대비한 배수펌프나, 만일의 사고에 대비한 긴급 대응 체제가 갖춰져야 한다. 하지만 호우경보가 발령되고 침수 사고가 날 때까지 누구도 지하차도 출입을 통제하지 않았다. 입구에 설치된 교통안내 전광판도 무용지물이었다. 침수 여부나 주의를 요하는 경고 문구조차 없었다.
부산시는 이날 오후 2시 호우주의보 발령 이후 사고 무렵 때까지 시민들에게 3차례 안전문자를 보내 차량운행 자제를 당부했다고 한다. 해당 구청은 지하차도에 설치된 배수펌프 3대를 가동했지만 만조와 맞물리면서 퍼낸 물이 재유입되는 바람에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사고 예방에 나름 노력했다는 해명이지만 설득력이 없다. 평소 위험이 예고되었다면 미리 차량을 통제하거나, 안전요원을 현장에 배치하는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더욱이 부산에서는 6년 전에도 동래구의 한 지하차도에서 비슷한 사고가 나 2명이 숨진 바 있다. 사고 재발을 막지 못한 부산시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지하차도 침수 사고는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에는 집중호우 때마다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지하차도가 145곳이 있다. 기상청은 장마에 따른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다음주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보했다. 각 지자체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지하차도 안전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정부도 지하차도 침수에 대비한 대책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호우 특보에 따른 차량 통제 매뉴얼을 마련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시민들 역시 집중호우 때 지하차도 같은 상습 침수지역에서 차량운행을 자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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