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일본 기업인 일본제철이 보유한 국내 주식(PNR)에 대한 한국 법원의 압류명령 효력이 4일 0시에 발생한다. 일본제철이 오는 11일 0시까지 즉시항고를 하지 않으면 한국 법원은 주식 매각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당장 주식을 매각해 현금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일 정부 간 모종의 조치가 없다면 자산 매각은 한·일관계 악화의 시한폭탄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지난 1일 자산 매각 가능성에 대비해 “모든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일관계의 악화가 불 보듯 뻔한데 대화를 통한 해결 의지보다는 보복을 앞세운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징용피해자 변호인단이 자산 매각을 신청한 이후 관세 인상, 송금 중단, 비자 발급 엄격화, 금융제재, 일본 내 한국 자산 압류, 주한 일본대사 소환 등 보복 카드를 거론해왔다. 지난해 7월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해 한·일관계를 악화시켜놓고 또다시 같은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달은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날, 15일 광복절 등 한·일관계에 변수가 많은 민감한 시기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보복 조치를 취하면 한·일관계는 회복하기 힘든 지경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지난달 말 이홍구 전 총리와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를 비롯한 두 나라 원로들이 화상회의에서 대화를 통한 관계 모색을 촉구한 바 있다. 결국 대화를 통한 해결만이 길이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징용 피해에 대한 보상이 완결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000년 이전 일본 외무성의 조약국장, 일본 최고재판소 등은 개인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본이 진정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과거사를 반성하고 있다면 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에 나서야 한다.
일본 기업의 자산 매각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남아 있다. 두 나라는 외교적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우선 일본 정부가 추가 보복 조치를 내놓지 말아야 한다. 한국 내 강도 높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부를 뿐이다. 일본에서도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는 실효성이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양국 정부는 이제 대립을 자제하고 외교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양국 관계의 파국은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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