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내각의 각료 4명이 지난 15일 태평양전쟁 패전 75주년을 맞아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참배 후 이들은 “한국이나 중국의 얘기를 들을 일이 아니다”(에토 세이이치 영토담당상),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을 어떻게 모시고 위령할지는 각 나라의 국민이 판단할 일”(다카이치 사나에 총무상)이라고 했다. 각료들의 4년 만의 야스쿠니 참배도 충격적이지만 이들의 ‘망언’은 어처구니가 없다. 과거 침략 전쟁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내정간섭을 말라는 식의 오만함에서는 주변국과의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풀려고 하는 것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아베 총리다. 비록 8년째 직접 참배 대신 공물을 바침으로써 논란을 피해갔지만 다른 각료들의 참배를 적극 막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다 보니 2012년 2차 아베 내각 출범 이후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2~3명의 각료가 참배해 분란을 일으켰다. 오죽하면 아사히신문이 사설에서 “정권 전체의 역사관이 의심받을 사태”라고 지적했겠는가. ‘깊은 반성’을 표명한 나루히토 일왕이나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와는 너무나 대비된다. 아베 총리가 전몰자 추도식에서 보인 태도도 실망스럽다. 그는 2차 내각 출범 후 해마다 반복해온 ‘역사와 겸허하게 마주한다’ ‘역사의 교훈을 가슴에 새긴다’는 말을 일절 꺼내지 않았다. 대신 그동안 국회 시정연설 등에서 자위대 명기를 바탕으로 한 개헌 추진을 강조할 때마다 쓴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자국 안보는 스스로 지키겠다’는 의미다. 아베는 그동안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일부 용인, 무기수출 3원칙 철폐 등을 진행할 때 이 말을 동원했다. 그가 패전 75주년에 이 말을 꺼낸 의도는 뻔하다. 과거사 반성을 통한 주변국과의 화해 모색보다는 본격적인 개헌을 통해 군국주의 부활을 노골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본심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아베 정부의 이 같은 행보는 분명 한·일관계 회복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처사다. 꽉 막힌 대화를 더 힘들게 만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화의 문을 닫을 수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75주년 경축사에서 일본에 대화를 제안했다. 아베 총리는 화답해야 한다. 물론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진정한 반성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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